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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나눔

그리운 것들은 학교에 있다

haagam 2011. 10. 15. 09:04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평생을 고향인 섬진강 자락에서 살아온 얘기들을 정리한 책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를 읽었다. 마치 나의 어릴 적 이야기를 적은 듯 많은 공감을 하였다.우리가 자라던 어린 시절은 누구나 어렵고 질박하였다.

어느덧 옛날을 회상하는 나이가 되어보니 모든 것이 어렵고 부족했던 환경을 극복하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학교였다.

생각해보면나는 학교의순전히 학교의 신세를 진 사람이다.

어려운 성장과정 속에서 오직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감을 느껴보고, 포부와 욕심도 가져보고, 친구도 사귀고, 공부를 통해 부족하나마 오늘의 나를 이루었다.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 속의 자책도, 이만큼의 나를 이룬 감사함도 그 중심은 역시 나 자신이지만, 벌거둥이 나를 오늘의 나로 일궈낸 터전은 역시 학교였다.

초등학교 6학년 말이었다.

담임선생님과 중학교 원서를 쓰다 날이 저물었다. 문득 자고 가라는 말씀에 나는 선생님 하숙방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어렵고 낯선 잠자리 속에서 선생님이 물으셨다. "너는 커서 무엇이 되련?", 나는 흔히 말하던 장군이나 과학자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몰라요!"라 답했다. "그래! 모를 수 밖에.... 그러나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면 된단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 후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고향을 떠나 낯설고 어려운 환경을 경험하면서 무엇이 될 줄도 모르는 많은 혼란을 경험하였고, 그 때마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내게 큰 용기가 되곤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선생님은 당시 초임의 총각이셨다.

대학시절 모신 정 총장님의 각별하신 사랑도 잊을 수 없다.

어느 초여름날에 총장님께서 댁으로 부르셔서 가 보니, 사모님이 사택 뒷뜰에서 직접 재배하신 신선한 딸기를 권하시면서 여러 말씀으로 격려해 주시고, 책을 쓰실 때마다 직접 격려 문구와 서명이 담긴 책을 주시며 격려해 주셨다. 졸업한 한 참 후 어쩌다 내가 쓴 글이 신문에 실렸느데 총장님은 어떻게 아셨는지 친히 학교로 전화를 걸어 격려해 주시고, 모교 교지에 실어주시기도 하였다.

나는 그져 평범하고 부족하기만 한 학생이었던 생각을 하면 당시의 나로서 너무 과분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나는 아무런 보담을 못 하였을 뿐만 아니라, 총장님은 이미 작고하신지 오래다.

어찌 그 뿐이랴! 초등학교 시절 2년간 담임이셨던 박 선생님은 방과후에 올겐 반주에 맞춰 노래를 가르쳐주셨는데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지금도 평소 가곡의 멋을 알고 즐기는 행복을 선물해 주셨다.

또 중학교 시절의 국어과 임선생님께서는 너무 재미있게 국문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 이후 글쓰기에 늘 자신감을 갖게 해 주셨다.

고등학교는 시골을 떠나 인천으로 유학을 갔다. 문득 음악실 선생님이 너무 멋있어보여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 말씀드렸는데 선뜻 음악실 열쇠를 내어 주시면서 이따금씩 바이엘 반주를 같이 해 주셨다. 그 덕으로 지금은 절대음감이 생겨 가끔씩 피아노 앞에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뚱땅거리며 나를 달래곤 한다. 참 훌륭한 선생님이셨다.

학교는 그런 곳이다. 아니 그런 곳이어야 한다. 모든 학생들에게 희망과 의지가 되고, 자신을 키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넓고 따듯한 곳이어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커 보이고, 선생님이 어렵고 존경스러우며, 학교가 자신의 전부로 인식되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생각은 우리 나이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가!

또한 그런 곳이 학교이어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을 지켜 나가는 일이 내가어릴 적 학교가 베푼 고마움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무조건 커서 돈 많이 벌어야 출세하는 일이고 그것이존재의 이유가 되는 어린 시절을 지냈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채 지금 나는 우연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가까이하는 일상을 지내고 있지만,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학교가 내게 베푼 무한하고 큰 사랑을 내리사랑을 통해서나마 갚고 싶다는 꿈을 실천하려고 한다.

오늘날과 같은 평생학습 시대에 학교가 학생들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덕목은 역시 꿈과 사랑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 우리는 과거 어렵던 시절에 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가? 교실 속 에어컨과 컴퓨터 따위는 정말 꿈에도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사람들은 학교에 대해 간혹 이런저런 불평을 말하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들은 학생들을 사랑하고 꿈을 키우는데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나는 오늘 우리가 이런저런 성취를 이루어 이런저런 자랑글을 적게 되었지만 사람이 사는 모습은 대동소이할 뿐 우리가 특별히 무엇을 하였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릴 적 우리 학교의 추억처럼 늘 구순하고, 서로 의지하고 믿는 순박한 마음 뿐이었다. 아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 앞에서 늘 정직하려고 노력하였다. 어려운 사안을 뒤집어 보면더 좋게 생각할 수 있는 많은 여지가 있을 뿐이었다. 사랑의 힘이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이 사는 근본 바탕은 바뀌지 않는 법이다.

그리운 것들은 우리를 키워준 산 뒤에 있다는 김용택 시이의 말처럼, 아이들이 성장한 후 오늘의 우리가 그들의 어린 시절 추억들이 묻혀이쓴 '그리운 산'이 되길 희망한다.

( 학바위,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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