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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그린 그림

난초(이병기)

haagam 2018. 11. 6. 21:21



난초(이병기)


1

한 손에 책(冊)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볓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

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 볕을 발틈에 비쳐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孤寂)한 나의 마음을 적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 앉아 책을 앞에 놓아두고

장장(張張)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4.

빼어난 가는 잎새 곧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

 이 작품은 자연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청신(淸新)한 감각으로써 현대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가람의 시조 정신이 잘 드러난다. 섬세한 감각과 절제된 언어로'난초'의 고결한 외모와 세속을 초월한 본성의 아름다움을 신비롭게 형상화하고 있다. 


의인화 수법을 통해 난초와 독자가 동일화되는 경지까지 유도한다. 이 시조는 고결하게 살고자 하는 지은이의 소망을 드러내며 현대 문명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이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를 일깨워 주는 난초의 고결한 삶에 대해 예찬하고 있다. 


[1]에서는 난초가 개화하는 순간을 나타내고 있다. [2]에서는 난초의 새로 나온 잎과 바람을 대비시켜 표현하고 있으며 '아침볕'이란 시각적 이미지와 '난초 향기'라는 후각적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 [3]에서는 난초와 화자의 마음의 교감이 잘 이루어져 있으며, [4]에서는 난초의 외양과 내면 세계가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은 자연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청신(淸新)한 감각으로써 현대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가람의 시조 정신이 잘 드러난다. 섬세한 감각과 절제된 언어로'난초'의 고결한 외모와 세속을 초월한 본성의 아름다움을 신비롭게 형상화하고 있다. 


난초를 소재로 한 4편 7수의 연시조로, 난초가 지닌 청아한 모습과 맑고 고결한 성품을 예찬하고 있다. 난초를 깊은 애정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작가가 추구하는 고결한 삶의 방식을 통해 현대인이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를 제시해 준다. 


난초의 청신(淸新)한 외모와 고결한 내적 품성( 외유내강 )을 예찬한 작품으로 난초를 의인화하여 노래한 작품이다. 고결하게 살고자 하는 시인의 소망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지향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

1891~1968(77세)

저서: 시조란 무엇인가, 시조는 혁신하자, 가람 시조집, 국문학개론

서울대학교 교수

전북 익산 출신, 변호사 이채의 장남이다.


1898년부터 고향의 사숙에서 한학을 공부하다 당대 중국의 사상가 량치챠오(梁啓超)의 <음빙실문집>을 읽고 신학문에 뜻을 두었다 한다.


1910년 전주공립보통학교, 1913년 관립한성사범학교 졸업, 재학 중 1912년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으로부터 조선어문법을 배웠다.


1913년 남영 전주제2여산 등의 공립보통학교 교편을 잡으면서 국문학, 국사에 관한 문헌을 수집하는 한편 시조를 중심으로 시가문학을 연구 창작하였다.


당시 수집한 서책은 뒷날 방대한 장서를 이루었는데, 말년에 서울대에 기능하여 중앙도서관에 <가람문고>가 설치되었다.


1930년(39) 조선어철자법 제정위원, 연희전문학교와 보성전문학교 강사를 겸하면서 조선문학을 강의하다가 1942년(51)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한때 귀향했다가 광복이 되자 상경하여 군정청 편수관을 지냈다.


1946년(55세) 서울대 교수 및 각 대학 강사로 분주했다. 6.25을 만나 1951년부터 전북 전시연합대 교수, 전북대 문리대학장을 지내다 1956년 정년퇴임했다. 1957년 학술원 추천회원을 거쳐 1960년 학술원 임명회원이 되었다.


스스로 제자복, 화초복, 술복이 있는 삼복지인이라 자처할만큼 술과 시와 제자를 사랑한 훈훈한 인간미의 소유자였다.


그의 전기 시조의 대표격인 <난초>는 자연관조를 노래하고, <젖>은 인정물등 순수서정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시조 이외에도 많은 수필을 썻고 특히 평생동안 극명하게 쓴 일기는 놀랄만하다. 주요저서로 가람시조집, 국문학개론, 국문학전사, 가람문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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