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자전거

리딩으로 리드하라(이지성) 본문

책 나라

리딩으로 리드하라(이지성)

haagam 2012. 3. 19. 16:08


서명 : 리딩으로 리드하라 :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저자 : 이지성

출판 : 문학동네(2010.11.17.1판 1쇄/ 2011.12.15. 1판 15쇄, 2011 YES24 네티즌 선정도서)

 

책을 만나는 일은 사람을 만나는 일처럼 자유롭거나 계획적이지 못하다. 나름대로 잘 고르려 하지만, 그 싯점에서의 정보력에 한계가 있고, 또한 책을 잘 고른다는 것이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경험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고, 한편 사람만나는 일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책을 고르는데 있어서 일본의 한 독서가는 한번 읽은 저자의 책을 다시 읽는 것을 삼가고 그 대신 그 저자의 가장 대표적인 책을 읽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편 어느 독자는 한 저자의 책을 모조리 섭렵하는 사람도 있으니, 무엇이 옳다 말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저자가 쓴 <독서천재 홍대리>를 읽고 우연히 다시 만난 저자의 책이 바로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이 책이니 재미있다. 그러나 우연이었다.

 

이 책은 세상을 지배하는 0.1%의 사람들, 즉 리더들이 그들의 오늘이 되기까지, 그리고 오늘을 유지하기까지 힘의 비밀은 부단한 인문고전 독서의 힘이라 주장하고, 인문 독서 방법을 안내하는 등 시종일관 인문 고전 독서이야기로 채우고 있다.

 

하긴 오늘날 대학에서 교양학부가 문을 닫고 실용학문으로 학과 개편을 하고, 고민이 없어진 감각 시대에 골치아파 보이는 인문학을 읽은 사람이 줄어든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나부터도 이런저런 인문고전의 도서 이야기가 나오면 안 읽은 것이 매우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두권도 아니고 또한 어떤 안내나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것도 아니라서 딱히 내세울 것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떻게 유관순은 열여섯 어린 나이에도 그 고초를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꺽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안중근도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젊은 나이에 뜻을 세우고 그것을 관철한 이야기들이 수도 없이 나오는데, 왜 오늘날은나이가 차도 자기 앞을 관리하지 못하고, 엄친아가 되고, 결혼을 해도 부모 신세를 지는 캥거루 가족이 되는 등 시대의 차이가 극심할까?

 

그 이유가 어쩌면 조선시대 선비들이 읽던 모든 책들이 인문 고전 즉 삶의 지혜를 담은 책을을 읽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요즘처럼 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려워 비교의 상대도 적고,엄한 스승 밑에서또는 좋은 책을 읽고 또 읽고 외우면서 그 책에 심취하여 그것이 자신을 지배하는 내적 가치관이되므로써 지금보다 훨씬 분명하고 자기 주도적인 사람이 되는것이쉬웠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조선시대의 고전은 유교 경전 뿐이었는데, 이제 우리는 서양 고전을 같이 읽어야 하므로, 독서의 부담이 더 커졌다는 점도 있다. 한편 동서를 두루 섭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인문고전을 중심으로 읽으라는 저자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중심으로 읽으라는 말은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실용도서에 탐닉하여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깊이가 없다는 점에소 동의하지만, 나름대로 실용 도서를 읽는 일이 부질없다거나 인문 도서 중심으로 읽으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좋은 책 한 권을 깊이 읽는 일이 잡서? 한 수레를 읽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다는 말에 동의하고, 사실 이런 책읽은 내용을 정리해보는 일을 하면서도 내가 읽는 책 중에 인문 고전이 없는 것에 대해 작은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또한 내가 다음 읽어야 할 책의 분야가 인문서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균형을 맞춰가는 일이고, 우선 책을 좋아라 읽는 일이 우선 중요하다 생각된다.

우리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잃은지 오래다. 실용 학문이 중심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조선 시대 지배계급은 인문고전 독서가 업業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미국교육이 우리 같을까? 미국의 명문 사립 중고교의 인문고전 독서 열기는 놀랍다. 그들의 학습과제를 들여다보자. 1)플라통의 <국가>를 읽고 이해한다. 2)도서관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주제로 집필된 모든 책을 찾아 읽는다. 3)플라톤의 <국가>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고 토론한다.

 

우리나라의 중고교 교육환경과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자란 학생들이 어떻게 서로 경쟁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미국 대학들의 인문고전 독서는 우리 상상을 초월하여 세인트 존스 대학은 4년 내내 인문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하고 에세이를 쓰는 것이 교육과정의 전부이다.

 

조지 와이드 대학은 멘토와 함께 인문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일이며, 예일대학은 디렉티드 스터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는 존 로크나 마키아벨리의 저술 같은 인문 고전을 중심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교수강의로 두 번은 학생 세미나를 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를 마치면 필수 교양 6 과목을 마친 것으로 인정한다. 미국 유명 160개 대학에서 대부분 인문 고전 100권 독서 프로그램 등의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 교육학과 부교수 황용길이 쓴 <부자 교육 가난한 교육>에서는 미국 부자 계급의 교육이 빈자 계급의 교육과 얼마나 다른지를 설명하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사실상 미국 빈자 계급의 교육을 따라하고 있다 지적한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두 축이 된 정주영과 이병철의경제 환경은극에 달할 정도로 달랐지만, 둘의 공통점은 인문 고전 독서교육을 받았고, 평생 인문고전을 애독했으며, 세게적인 기업의 창업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병철은 평생 <논어>을 삶의 지침으로 삼고 자신의 모든 경영 비법은 논어에서 비롯되었다 고백하였으며, 아들 이건희에게 추천한 단 한 권의 책이 <논어>였다.

 

정주영회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어릴 적 조부가 운영하는 서당에서 3년간 동몽선습, 소학은 물론 대학, 논어, 맹자, 자치통감 같은 고전을 눈감고 외울만큼 열심히 공부했으며, 후일 그는 그때 배운 한문 글귀들의 진정한 의미를 자라면서 깨달았고 내 지식 밑천의 큰 부분이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조선의 세종과 정조는 어릴적 부모가 병을 얻을까 걱정할 정도로 인문 독서에 광적이었고, 경연을 수시로 열어 국가 경영의 지혜를 얻었으며, 그들은 국가 경영 능력이 인문고전에서 비롯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일본 최고의 국가경영 능력을 보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중국 역대 황제들과 지도자들이 필독서로 삼은 <정관정요>를 제1 필독서로 삼았다. 세계 최고의 지도자들도 인문고전 독서에 대단한 열의를 보인 것이다.

 

저자는 인문고전의 독서 경험을 부끄럽게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초보자들에게 인문독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실감나게 안내한다.

저자는 청년시절부터 작가가 되는 꿈을 품고 매일 눈이 빠져라 책을 읽고 몸이 부서져라 글을 썼지만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15년을 지냈다. 무엇이 부족했을까? 그는 인문고전의 독서라고 스스로 판단하였다.

 

그가 대학생이 되자 부친이 선물한 <장자>와 <순수 이성 비판>을 읽다 실패하고, 24살 대학 4학년 시절 다시 결심을 하였지만 도서관에서 임용 고사 준비를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존재와 무>를 읽다가 친구들로부터 이상한 눈길을 받고 그만두었다.

 

28세때 다시 결심을 한 것은 출판사와 계약을 마친 원고의 출판이 취소되면서였다. 자신의 글에 깊이가 없는 때문이라 생각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인문고전은 천재의 두뇌 그 차체이고, 인문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천재와 대화하는 행위였다. 천재들의 저작을 죽기살기로 읽으면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 아지 죽기살기로 읽어 두뇌를 손톱만큼이라도 달라지게 해야 한다는 각오였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는 평일에는 하루 1~2권을, 휴일에는 평균 5~10권을 읽었으나 인문고전을 읽기는 어려웠다. 휴일에 10시간씩 파고 들어도 두세페이지 이상 나가지 못했고, 다음날 아침이면 모조리 잊기 일쑤였다. 플라톤의 <소피스테스>나 <타마이오스> 같은 경우 책 한권을 떼는데 각각 1년이 걸렸다. 그래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책을 읽었다. 그는 이런 노력이 천재의 두뇌 속에 직접 접속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이를 실천하고자 부단히 노력한 것이다.

 

이런 두통을 참고 독서를 계속하다보면 강박 관념과 두통이 어느새 황홀한 감정으로 바뀌고 어느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우리가 오감으로 아는 시공간과 전혀 다른 시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헝언할 수 없는 밝고 아름다운 빛이꽉 막힌 머릿속을 확 뚫고 들어오는 느낌, 가슴 속이 말할 수 없이 시원해지는 느낌, 단전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선인들은 과연 어떻게 인문고전 독서를 실천했을까?

세종의 독서법은 백독백습百讀百習, 즉 100번 읽고 백번 필사하는 것이었다. 왕자 시절 그러다가 병을 얻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태조가 23회, 태종이 80회 열었던 경연을 1,898회 열고, 249권에 달하는 <자치통감>을 경연에서 3년간 강독하였다.

 

서애 유성룡은 18세에 <맹자>를 읽으려 작심을 하고 관악산 암자에 들어갔는데 한 중에맹수인지 모를도둑인지 기괴한 그림자가 얼씬거리는 것을 알면서도꿈쩍하지 않고 읽었다 한다.

남명 조식은 새벽에 일어나 의관을 단정히 갖추고 종일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조각상같은 모습으로 독서하였다. 그는 몸에 검을 차고 독서를 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이제서야 독서할 여유를 얻었다.'하며 기뻐했다 한다.

 

공자는 <주역>의 이치를 깨치기 위한 방법으로 반복독서한 이야기로 죽간을 묶은 가죽끈이 세번이나 낡아 끊어졌다는 韋編三絶위편삼절은 유명하다. 세종은 <구소수간>을 1,100번 반복해서 읽었다. 친구 성혼에 의하면 율곡 이이는 한해에 <논어> <중용> <대학> <맹자>를 각각 아홉번씩 반복해 읽고 또다른 고전인 <시경>을 읽고 있었다 한다. 우암 송시열은 <맹자>를 1,000번 넘게 읽고 앞부분은 수천번 읽었다한다.

 

저자는 인문고전을 읽을 때 가급적 해설서를 멀리하고 원본을 읽을 것, 그리고 필사를 권한다.

그는 거의 대부분의 인문고정를 필사했다. 방송국에서 지하철에서 공원 벤치에서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노트 필사를 하고, 그후 워드 필사를 하다가 얶개가 아파 나도 모르게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른 적이 수차례였다. 나중에는 복사기로 책을 여러 쪽 복사한 뒤 각 행 밑에 있는 여백에 필사하였다. 녹음하여 운전 중에 듣기도 하였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베게티우스의 <군사학 논고>는 그렇게 읽었다.

 

인문고전은 치열하게 읽어야 한다. 미친듯이 지독하게 읽어야 깨달음이 비로소 온다.

그는 하루 한 권의 책을 읽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밥과 잠을 허락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밥은 세 번 먹으면서 책은 세 권 읽지 못하고, 잠은 네시간 이상 자면서 책을 네시간 이상 읽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용서할 수 없었다.

 

하루 아침에 죄인이 된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복사뼈에 구멍이 세번이나 날 정도로 치열하게 인문고전 독서하였고, 정조는 격무와 당파싸움 암살위협 속에서도 손에서 인문고전을 놓지 않았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화형선고를 받고 도망다니면서도 인문고전을 읽고 글을 썼다.

 

파스칼은 치통과 두통, 위와 기관지질환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인문고전 독서에 몰두했고, 슈바이쳐는 아프리카 살인적 더위를 참으면서도 매일 인문고전을 읽고 연구하였으며, 후일 포로수용소 수감 시절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몰래 반입해 읽었다.

 

인문고전 독서에 삶의 지혜와 길이 있다.

 

(학바위, 2012)

 

이지성

1993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학원, 과외 필요 없는 631학습법>(2003)을 시작으로 20여권의 책을 출간, 대표작 <꿈꾸는 다락방>,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스믈일곱 이건희처럼> 등은 150만부가 넘게 팔렸다. 자기계발서로 <18시간 몰입의 법칙>, <수호기사의 편지> 등이 있으며, 시집도 네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