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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 시작(-294일)

haagam 2015. 11. 11. 23:55

 

 

  교육공무원으로 62세에 퇴직하고, 입직 첫날부터 공무원 연금을 납부해서 33년 만기 연금을 납부한여 이제 갓 태통한 국민연금보다 혜택이 좋으니 대부분 일을 놓은 친구나 주변 사람들은 아직 교장으로 현직에 있거나 연금을 탈 수 있는 노후가 있다는 것에 대해 걱정이 없으니 좋겠다며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퇴직을 앞두고 퇴직에 관련된 이런저런 책을 사서 보기도 하고, 노후 생활에 대한 안내서로 <계노록>이나 <아버지의 부엌> 등등 여러 노후 준비를 위한 책을 사서 보기도 하였다. 3층 연금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도 되었고, 나도 어디 임대주택을 구입해서 또박또박 수입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꾸어 보기도 하고, 전기 면허를 가진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자격증을 맡기고 용돈을 받는 사람들이 부러워서 나도 공부라면 남만큼 할 수 있는데 전기기사 자격증이나 도전해볼까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참 나는 공인중개사 자격이 있다. 1회 시험에 취득을 했는데, 공부할 때에는 첫회 시험이라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다. 가장 솔깃한 말은 자격증을 맡기면 집안 살림이 될만큼의 돈이 되어서 맘놓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이었다. 생경한 영역이었고, 관련 과목이 무척 많았는데, 당시 나는 한산에서 처음 고교 교사로 전직한 시점이라 교재연구도 바빴다. 교무실에서 앉아계신 선배 선생님이 자격 공부하는 모습을 보다가  책을 사달라 부탁하고  시나브로 공부하다가 원서를 내고 마음이 급해서 3주 정도 공부했는데, 시험이 워낙 쉽고 나는 원래가 아는 것보다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라서 실수로 합격했다.

 

   나는 46세에 장학사가 되어 연수를 받으러 갔는데 직장생활하는 중에 그때 한달이 제일 행복했다. 선배들이 하는 말했다. '이제 승진열차에 올라 탔으니 가만이 있어도 세월에 따라 자연히 승진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정년 이후를 준비하며 살아라.'

 

  그러나 수업만 하던 내게 첫 전문직은 일도 서툴고 새로운 일이라서 일이 벅차고 많아 늘 야근을 해야 했다. 일 욕심이 많은 나는 정년 같은 것은 문득문득 생각날 뿐이었다.

 

  정년 준비의 뜻이 무엇인가?  경제적 안정, 건강한 체력, 다양한 취미, 좋은 친구들, 보람있는 봉사활동, 그리고 아내 등이 주섬주섬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퇴직 이후에 돈을 버는 것은 마음대로 될 일이 아니고, 젊어서도 벌지 못한 돈을 어떻게 나이들어 벌 것인가? 그리고 연금 이상의 돈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노력은 해 볼 일이지만. 그러나 연금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건강인데 아침 운동을 오래 하고, 예방적 차원에서 병원 다니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아직 큰 어려움은 발견하지 못한 편이다.

생활보장이 된다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공부와 일만 알고 살았는데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 볼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이 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우선 집장만하는 등 경제적인 생활 기반을 닦고 아이들 가르치고 하는 일이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어디 취미생활을 한다는 말인가? 그런 일은 유산을 받아 집을 쉽게 장만하거나 부부교사 들이나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얼마나 부족한 마음이었나. 내가 취미를 갖지 못한 것은 내 마음이 그랬을 뿐 나는 샹황에 맞는 다양한 취미가 늘 가능했었는데 다만 마음을 그렇게 먹을 뿐이었다.

 

  또한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나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것을 알아내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등산을 좋아하고 있었다. 당구나 바둑이나 배구나 축구나 탁구나 이런 보편적인 취미를 가질 여유가 없었고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운동신경이 둔해서 구기에 젬병인 사람이었는데 노래부르기를 좋아하고, 뚱땅거리면서 혼자 흥에 겨워 피아노를 치면 기분이 좋았다. 배낭을 메고 혼자 산을 오래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위안이 되는 것을 알았다. 산은 혼자도 좋고 여럿이도 좋고 나름대로 늘 좋았다. 관악부가 있는 학교라서 쉬는 섹소폰을 가지고 불어보니 리코더와 같은 스케일이라 그대로 소리가 났고, 리코더로 '고향을 봄' 같은 간단한 노래를 연주할 수 있었는데 그 실력으로 간단한 동요나 가요를 불면 노래가 되었다. 늘 집을 나와 버스를 타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좋은 생각이 쑥쑥 떠올랐다.

 

  시나부로 여유가 있을 때마다 섹소폰을 불었다. 조금씩 학원을 다니기도 하고, 학교에서 점심시간 등에 불어보 보고, 책을 사서 혼자 공부도 하고 그렇게 10여년이 지났다. 그러나 실력은 장 그대로였다. 언젠가 퇴직하신 선배님이 평생 불 일인데 뭘 하더라도 렛슨을 받고 똑바르게 해서 남 앞에 설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다시 학원에 등록해서 몇달 다녀보기도 했지만 시간을 내는 일이 어려워 다시 포기했다. 그러나 섹소폰은 내게 큰 위안이었다. 이제 나는 일이 나의 전부가 아니다. 내가 목청이 나빠서 잘 부르지 못하는 노래를 악기를 통해 맘껏 불 수 있게 되었고, 조금씩 소리가 부드러워지고 강약을 조절하거나 서툴지만 이런저런 기법을 터득하면서 소리가 좋아지는 일이나, 서툴더라도 혼자 하는 일이니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반주기에 맞춰 부를 수 있고, 연습하면 더 좋아질 일이며, 평생 악기에 의지해서 살아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고, 직장이 아닌 또다른 세상을 갖는 기분이었다. 섹소폰을 잘 불면 여러 사람들에게 공연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정년 이후에 좋은 소일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부자가 된 것이다.

 

   한동안은 토요일이면 무조건 산엘 갔다. 참 행복한 일이었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있을 때였는데 나는 우연히 매주 덕유산을 올랐다. 아침에 눈을 뜨면 거실에 꺼내놓은 배낭을 메고 새벽 내장산을 가는 길은 참 신비로왔고, 나는 안성에다 차를 놓고 동엽령을 통해 향적봉 쪽을 가다가 힘이 들면 다시 내려왔는데 그 길은 참 위안이 되는 길이었다. 지리산 종주를 좋아해서 여름이면 종주를 하는 것도 좋았고, 아침 일찍 배낭을 메고 계룡산 큰배재-남매탑-삼불봉-자연성릉-관음봉-은선폭포 코스는 그냥 일상적인 습관이었다. 주위에 퇴직하신 선배님 중 산행을 좋아하시는 어느 분은 일주일에 5회 이상을 등산하시면서 등산이 소일인 분이 있는데 좋아보였다. 그분도 행복해 하시고 젊어서 매우 방탕했는데 지금은 아주 인품이 있는 겸손하신 생활을 하시는 것이 산을 통해 얻은 인품이라 생각되었고, 나도 그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너무 아름다운 경관이 많아서 사진을 배워 지리산에 머물면서 이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내는 사진작가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사진도 어설프지만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카메라의 원리가 뭔지 이해하게 되었고 또 선배님 말씀 중 어딜 혼자가면 남들이 우습게 보거나 겸연쩍어지지만, 카메라 하나를 들고 다니면 혼자 다니는 것이 오히려 멋있고 즐거워진다는 말이 위안이 되었다. 지금은 늘 미러리스를 가방에 넣거나 백팩에 메고 다닌다. 여럿이 가는 길에는 내가 늘 공식 사진사가 되었다. 아직 제대로 배운 젓이 없어 잔재주 부리는 이런저런 일은 못하지만 손에 카메라가 익었고 최소한도 조리개 우선이나 셔터 우선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게 되었고 구도의 기본도 어깨너머로 배웠다. 나는 앞으로 평생을 백팩에 노트북과 카메라를 담아 들고 다닐 것이다. 그 안에 속옷이나 한벌 넣고 신용카드 한두장만 있다면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인가?

 

  10여년 전에 아주 소규모 학교 초임 교장으로 가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학교를 제대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고민하다가 독서교육을 강조하였다. 책을 읽고 글로 적어보자는 얘기를 하다가 나도 독서를 소홀히 하고 특히 뒷새김으로 글을 적거나 말로 표현하는 일은 생각도 못하고 지내는 것을 반성하였다. 그리고 수불석권을 알게 되었고 늘 책을 손에서 놓지 말기로 하고, 책을 읽고나서는 서툴지만 서평을 적기로 하였다. 그것이 현재 이 블로그이다. 처음에는 파란paran 포털에 둥지를 틀었는데 접속자가 하루에 한명이었다. 바로 나 하나인 것이, 누가 이 블로그를 방문한다는 말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검색을 통해 접속하다가 단골 접속자가 늘기도 하고, paran 관리자가 내가 쓴 글을 가끔씩 첫 페이지에 소개해 주기 시작하고, 어느 해인가는 내 블로그를 그 해의 best 블로그로 뽑아주기도 하였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후 kt에서 paran 포털을 포기하고 이곳 tistory로 집을 옮겼는데 그 때도 당분간 접속자는 나 한명이었다.

 

   나는 아침이면 집앞 헬쓰장에 가서 운동을 하는데 이것 또한 매우 즐겁고 고마운 일이다. 처음 헬쓰장에 갈 때는 자세가 뭔지도 모르고 또는 런닝머신이라 타다 오곤 했는데 이제는 데드 리프트, 스쿼드, 플랫베드 등을 기본 운동으로 하고, 이런저런 운동을 같이 한다. 샤워할 수 있는 것도 좋고 운동하고 나올 때의 기분은 해 본 사람만 나는 기쁨이다.

 

  정년 퇴직하면 뭐 하고 지내나? 나는 평상시 내가 좋아하던 이런 일들이 나를 기다린다는 것을 안다. 우연히 맡게 된 대학강의도 벌써 6학기를 하고 있고, 성당 성가대나 섹소폰도 큰 즐거움이고, 카메라와 여행도 큰 즐거움일 뿐더러 독서를 하고 이렇게 포스팅하는 재미도 보통 재미가 아니다. 나는 그림도 배우고 싶고, 당구학원도 다닐 것이고, 골프도 하고 싶다. 기회가 되면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년 되직하면 뭐 하고 지내냐구? 내 정년은 "황홀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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