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자전거

군자부중君子不重 본문

책 나라

군자부중君子不重

haagam 2020. 7. 27. 11:24

子曰, “君子不重, 則不威, 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자왈. "군자부중, 즉불위, 학즉불고. 주충신. 무우불여기자. 과즉물탄개." <01學而_0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신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며, 배워도 견고하지 않게 된다. 충실과 신의를 중시하고,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으로 사귀지 말며,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공자는 불쑥 군자의 부중不重을 말한다. 그는 경망스럽다거나 말이 많다거나 촐싹댄다거나 재기 발랄하다거나 등등의 말을 한꺼번에 부중하다고 말해버린다. 논어의 첫편인 학이에서 8번째로 강조된 말이 군자부중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군자는 무릇 신중해야 한다.

 

나는 重을 신중하다로 해석하는 것에 썩 마음들지 않는다. 그냥 무겁다는 말 그 자체가 좋다. 사람이 과묵하다, 무겁다. 묵직하다. 가볍거나 경망스럽지 않다라는 품으로 기술되는 것이 더 멋져 보인다. 무겁지 않을 경우의 부담이 불위와 학불고, 위엄이 없어보이고 학문을 견고하게 이루기 어렵다은 아닐 것이다. 다만 사회생활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체통이 없어보이거나 그가 이룬 학문의 뿌리가 흔들린다는 것은 삶의 전부에 관한 일이 될 것이다.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으로 사귀지 말라는 것은 사람을 가려 사귀라는 말 정도로 넓게 풀면 좋겠다. 논어에는 처신에 대한 말이 많은데, 04이인里仁편의 첫 절의   인한 마을에 사는 것이 좋고 지혜로운 일이라는 말(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도 한편으로는 사람을 사려 사귀라는 말로 연상이 되는 구절이다.

 

 젊은 날 나는 정곡을 찌른다던가, 맥을 잡는다던가, 날카로운 식견을 가졌다는 말을 좋아하고, 어디서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으면 그것이 유능함의 표출이라 생각했다. 인정받고자 하는 치기가 없었다 말할 수 없고, 말한 결과는 주최 측에게 어려움을 주고 회피하려는 맘이 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공자는 부중의 상대어로 주충신을 말한다. 충과 신을 중심으로 놓으면 군자가 중해질 수 있다는 말이고, 부중하면 충하거나 신하기 어렵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어제 좋은 분을 만나 식사를 같이 했다.

생각이 유연하고 재기 발랄해서 같이 일하는데 너무 시원시원하고 나와 케미가 맞는다는 느낌이 드는 CEO였다. 자신이 말하길 "나는 말로 다 까먹는다는 말을 듣는다. 말을 줄여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에도 말하는 것이 즐겁다."라면서 연중 재미있는 말을 쉬지 않고 했다. 나는 곁에서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좀 더 자중하는 것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묵하라는 말이 아니고, 위엄을 잡으라는 말도 아니다보니 요즘 시대에서 적당한 위트와 재미있는 남자, 그리고 CEO의 균형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잘못하면 느글거리고, 너무 말이 많으면 경망스럽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타고난 성격이 있어서 임의로 선택하기도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한편 요즘 재미있는 남자는 얼마나 대세적인 표현인가? 그러나 말로 까먹지는 말자.

 

  공자가 정작 부중不重을 걱정하는 이유는 則不威, 學則不固 위엄이 없고 학문에도 확고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본질을 잃고, 대인 관계에서는 위엄을 잃어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동체에서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이다. 

 

  뭐 이런저런 부중한 사람의 걱정을 하지만, 역시 이 구절의 키워드는 군자부중, 군자가 신중하지 못함은 득이 없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더욱 생각나게 하는 말이다.

 

#군자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