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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역에서

haagam 2023. 2. 21. 07:10

"여보 나 표를 잘못 끊었네. 다시 7시 반야."
"거꾸로 끊었구나"
"그랬나봐. 그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있다 나올껄 그랬어.

 근데 왜 자꾸 눈물이 나오냐? 안그럴려구, 씩씩하려구 맘먹었는데... 자꾸 눈물이 나네."
"왜 갑자기 그러세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간호사는 상주보호자가 아니면 곧바로 나가달라 했다. 그때는 오후 4시 30분이었고 내 표는 7시 30분이었다.  급히 휴대폰  검색해서 5시 30분 표를 구하고  병원을 병원을 나왔다. 역에 도착해보니 구입한 차가 없었다. 살펴보니 그 표는 "수서->오송"이 아니라 "오송->수서" 였다.  지금 나는 두시간을 수서역 라운지에 앉아 휴대폰을 열고 엄지손가락으로 뚜벅뚜벅 이 글을 입력하고 있다. 

 

4일 전 아내는 병원 입원 날짜를 통보받았다. 예정보다 약 1주일 늦은 셈이다. 입원 신청 후 대기 기간이 통상 한달이라는 병원의 안내를  들은 후, 한 달이 다가올수록 마음 한 켠이 짠했지만, 막상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으니 오히려 조바심이 들었다.

 

종일 콜센터로 홈페이지로 헤맸지만 연결이 안되어 답답했다. 이튿날 아침 8시 콜센터 문을 열리자마자 곧바로 전화를 걸어 겨우 전화가 연결되었다.  원무과 여직원은 앞으로도 2주정도는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단다.  그날 오후 아내는 문득 입원 날짜를 통보받았다.


어느덧 나이가 무거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젊은 사람은 없다.  사람이 나이는 속이지 못한다는 말처럼 문득문득  잠에서 깨어보면 어느날은 새벽 1시이고 어느날은 3시이다. "건너방에 깃털같은 아내가 누워있겠구나." 생각하노라면 저어기 창 너머에서 검은 죽음의 그림자가 넘실넘실 나를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들고 이내 무기력해진다. 날이 밝았는데도 일어나지 못하다가 추스리다가 다시 기운을 북돋우려면 이리저리 한참을 버둥대곤 한다. 아내의 달그락거리는 아침 준비 소리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100세까지 홀로 계시다 돌아가신 어머님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나. 나는 어머니가 그져 장해보였고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오지랍 넓은 말씀만 드리다가 손님처럼 가곤 했다. 자식도 아내도 다 그럴 것이다. 아픈 사람과 늙은 사람의 외로움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그렇게 묘한 긴장감으로 며칠을 지냈다. 문득 헌금하려고 바꿔 담아놓은 종이 봉투를 들고 아내에게 갔다.

"여보 이거 가지고 하루에 한 가지씩 맛있는거 사먹어."

"어머, 좋아라. 웬 일이래?"

어느 날은 꿍쳐둔 농협 상품권이 생각났다. 아내가 없는데 이게 무슨 소용이람. 마침 그날은 입원을 앞두고 인사하러 올 딸을 위해 수육거리를 산 날이었다.

"여보 이거 낮에 산 고기값이야."

아내가 병원에 있다고 침울해하지 않기로 했다. 전처럼 통상적인 일과를 소화하고, 김박사와의  정기 산행도 가고, 예약한 동남아 여행도 가기로 했다. 아내도 동의한 일인데 막상 입원한 아내를 두고 여행한다는 것이 마냥 어색하고 죄인같다. 나는 목이메여 훌쩍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맺었다.

 

"그래 여보. 잘 이겨내자구!"

 

그래 당신도 나도 모두 잘 이겨내자! 그지? 수서역 라운지 창가가 아직도 뿌옇게 흐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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