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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haagam 2010. 5. 12. 15:54

1961년 충남 논산 강경여고생 윤석란은 봉지쌀을 모아 병석에 오래 누워계시던 은사를 찾아뵙곤 했다. 그러다 1년에 하루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날을 정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청소년적십자단 친구들과 함께 사은회를 마련했다. 이 갸륵한 뜻은 이내 충남 여러 학교로 번졌다. 63년 청소년적십자 충남학생협의회는 9월 21일을 '은사의 날'로 정해 충남 전체 사은회를 열었다.

▶64년 청소년적십자는 날짜를 5월 26일로, 이름을 '스승의 날'로 바꿔 전국 기념일로 정했다. 이듬해엔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바꾸고 전국 학생회장들에게 동참을 권했다. 5월 15일 아침 선생님들은 교문에서 '스승의 날,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리본과 장미꽃을 받았다. 사제(師弟)가 함께 눈물을 쏟았다. 강경여고, 지금의 강경고엔 스승의 날 기념탑이 서 있다.

▶1973년 스승의 날은 불법이라며 금지됐다가 1982년 공식 기념일로 되살아났다. 그해 스승의 날 전북 임실 덕치초등학교 선생님 김용택은 6000원을 받았다. 반 아이 여섯이 1000원씩 걷은 돈이었다. 시인은 때 묻은 돈이 고마워 학급 책을 샀다. 그게 38년 교직에서 유일하게 받은 스승의 날 선물이다. "스승의 날보다 김장철에 뇌물 많이 먹었습니다. 학부모들이 김치를 겁나게 담가 와서 겨우내 먹었지요."

미국 스승의 날은 1980년 교사단체 제안으로 3월 7일로 정해졌다. 85년엔 학부모교사협의회(PTA)가 권고해 5월 첫 주 화요일로 옮기고 한 주(週)를 '스승에 감사하는 주간'으로 삼았다. 학생들이 꽃·비누·초·초콜릿을 갖고 오면 한데 모아 선생님들에게 전달한다. 학교 중엔 원하면 동네 마트나 서점에서 쓰는 5~25달러 선물카드도 괜찮다는 안내문을 돌린다. 누가 보냈다는 표시는 못하게 한다.

▶우리 스승의 날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선물과 촌지를 막는다며 문 닫는 학교가 많다. 스승의 날을 학년 말 2월로 옮겨 뇌물성 선물을 줄이자는 얘기도 나왔다. 올해는 최대 교원단체 교총이 처음으로 기념식을 취소했다는 소식이다. 50년 전 스승의 날을 제안했던 윤석란 수녀가 몇년 전 인터뷰에서 한 말을 다시 들어보자. "스승의 날이 본래 의미를 되찾으려면 선생님은 자신의 의무를 되새기고 학부모는 자녀만을 위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조선일보 2010.5.12. 만물상 컬럼(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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