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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천성 이해하기

haagam 2012. 1. 4. 16:16




□ 개요

- 위치: 중국 남서부 양쯔강(揚子江) 상류에 있는 성(省)

- 면적: 56만 9,000 ㎢

- 인구: 약 8,430만명

- 성도 : 청두(成都)

사천성四川省의 중국 발음은 쓰촨성이고 위치로 보면 중국의 중앙에 있다. 사천성이란 이름은 이 지역에 4개의 강, 즉 양쯔강, 민장강(岷江), 퉈강, 자링강(嘉陵江)이 성내를 흐른다는데서 유래되었지만, 이 지역은 원래 여러 강과 하천이 많은 지역이다.

□ 지형 및 기온

동쪽의 쓰촨분지(四川盆地)와 서부고원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쓰촨분지는 적색 토양으로 구성되어 있어 ‘적색분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분지 주위에는 해발고도 1,000∼3,000m의 다량산(大凉山)/민산(岷山)/다바산(大巴山)/우산(巫山) 등의
산지와 고원이 펼쳐진다.

분지(盆地)의 바닥은 500m 이하로, 광대하고 비옥한 선상지 청두 평원도 있으나 고원의 대부분은
파상지를 이루고 있다.
칭창고원(靑藏高原) 남동쪽의 서부고원은 원래 시캉성(西康省)의 주요 지역으로 대부분이 해발고도
3,000m 이상이다.

산맥이나 하곡은 북서쪽에서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많고, 하곡은 깎아지른 듯한 협곡을 이루는가 하면
궁가산처럼 1년 내내 눈이 덮여 있는 7,000m에 달하는 산도 있다.

하천은 모두 양쯔강 수계에 속하고 양쯔강의 본류가 우산산을 횡단하는 성의 경계에는
예로부터 험하기로 이름난 싼샤(三峽)가 나타난다.
동부분지에서는 겨울이 따뜻하고 여름에 극심한 무더위가 계속된다. 강수량은 1,000mm 내외이다.
그 반면 서부고원은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동쪽의 쓰촨분지(四川盆地)와 서부고원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쓰촨분지는 적색 토양으로 구성되어 있어 ‘적색분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분지 주위에는 해발고도 1,000∼3,000m의 다량산(大凉山)/민산(岷山)/다바산(大巴山)/우산(巫山) 등의
산지와 고원이 펼쳐진다.

분지(盆地)의 바닥은 500m 이하로, 광대하고 비옥한 선상지 청두 평원도 있으나 고원의 대부분은
파상지를 이루고 있다.
칭창고원(靑藏高原) 남동쪽의 서부고원은 원래 시캉성(西康省)의 주요 지역으로 대부분이 해발고도
3,000m 이상이다.

산맥이나 하곡은 북서쪽에서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많고, 하곡은 깎아지른 듯한 협곡을 이루는가 하면
궁가산처럼 1년 내내 눈이 덮여 있는 7,000m에 달하는 산도 있다.

하천은 모두 양쯔강 수계에 속하고 양쯔강의 본류가 우산산을 횡단하는 성의 경계에는
예로부터 험하기로 이름난 싼샤(三峽)가 나타난다.
동부분지에서는 겨울이 따뜻하고 여름에 극심한 무더위가 계속된다. 강수량은 1,000mm 내외이다.
그 반면 서부고원은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동쪽의 쓰촨분지(四川盆地)와 서부고원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쓰촨분지는 적색 토양으로 구성되어 있어 ‘적색분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분지 주위에는 해발고도 1,000∼3,000m의 다량산(大凉山), 민산(岷山), 다바산(大巴山), 우산(巫山) 등의 산지와 고원이 펼쳐진다. 분지(盆地)의 바닥은 500m 이하로 광대하고 비옥한 선상지 청두 평원도 있으나 고원의 대부분은 파상지를 이루고 있다.

칭창고원(靑藏高原) 남동쪽의 서부고원은 원래 시캉성(西康省)의 주요 지역으로 대부분이 해발고도 3,000m 이상이다. 산맥이나 하곡은 북서쪽에서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많고, 하곡은 깎아지른 듯한 협곡을 이루는가 하면 궁가산처럼 1년 내내 눈이 덮여 있는 7,000m에 달하는 산도 있다. 하천은 모두 양쯔강 수계에 속하고 양쯔강의 본류가 우산산을 횡단하는 성의 경계에는 예로부터 험하기로 이름난 싼샤(三峽)가 나타난다.

동부분지에서는 겨울이 따뜻하고 여름에 극심한 무더위가 계속된다. 강수량은 1,000mm 내외이다. 그 반면 서부고원은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촉(蜀)의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안개가 잦다. 그 반면 서부고원은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 농업과 자원

식량 생산량과 쌀 생산량 모두 전국 제1위이고 밀, 옥수수, 보리도 많이 산출되는데 특히 청도우 평원에는 도우장언(都江堰) 등의 관개시설이 정비되어 있다.

경제작물로는 목화, 저마, 차, 유채가 주로 재배되고 양잠업도 성하며 과일나무도 많다. 산지에는 1,000만ha나 되는 광대한 원시림이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목재 이외에 동유(桐油), 동백유, 옻칠, 오배자(五倍子)를 비롯하여 한방용 약재도 풍부하다

사육 돼지와 소의 숫자도 전국 제1위를 차지하고 서부고원의 광활한 초원에서는 야크(소와 비슷하며 힘이 세고 큰 짐승), 염소, 면양이 사육된다. 팬더나 모피를 얻기 위해 기르는 가축도 많다

지하자원

지하자원은 종류나 매장량이 모두 풍부한데 그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 석유, 천연가스, 석탄, 철, 금, 구리, 알루미늄, 아연, 소금, 석면, 운모 등이 있다. 소금은 쯔궁(自貢) 일대의 염정(鹽井)에서 산출된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쓰촨분지의 중부에 널리 분포하고, 탄전은 성의 동부와 남부에 많다.

화잉산괴(華瑩山塊)의 중량산(中梁山) 광산은 석탄으로 유명하고, 치장 이외에 시창전구(西昌專區)의 판치화(樊枝花)에서 대규모 철광산이 발견되었으며, 석면은 스몐현(石棉縣)에서 많이 난다.

공산정권 수립 후에는 철강, 기계, 전기, 화학, 방적, 식품, 제지 등의 공업도 급속도로 발전하여 충칭(重慶) 이외에 청두, 난충(南充), 네이장(內江), 이빈(宜賓), 쯔궁(自貢) 등의 발전이 두드러지고, 비단, 동기(銅器), 칠기, 죽세공 등 공예품의 생산도 활발해졌다.

바오청(寶成), 청위, 촨첸(川黔)의 3개 철도가 개통된 뒤에는 싼샤 항로(航路)가 정비되어 육상 및 수상 교통이 모두 편리하게 되었다

성도(省都) : 청두(成都)

청두(成都)는 평원 중앙에 있다. 연평균온도는 16.3℃이고, 1월 평균온도는 5.6℃이며, 7월 평균온도는 25.8℃이다. 연강우량은 967mm이다.

약칭은 룽(蓉)이며 서남지대의 중공업기지이며 쓰촨성의 행정, 경제, 교통, 문화 중심이다

전국시대부터 있어온 도시로, 춘추전국시대에는 촉(蜀)의 수도였다. 진(秦)/전한(前漢) 때는 촉군(蜀郡)이 관할하는 청두현(成都縣)이 설치되었고, 후한(後漢) 때에는 이저우(益州)의 통치도 겸하게 하였다.

삼국시대 때 유비(劉備)가 촉한을 통일하고 이곳에다 수도를 건립하였다. 삼국시대에는 촉한(蜀漢)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으며 당(唐)의 현종(玄宗)은 안사의 난 때에 이곳으로 피신하였다. 수당(隨唐) 시대 때는 창안(長安), 양저우(揚州), 둔황(敦煌)과 같이 4대 도시였다.

옛날부터 방직업이 발달되었고, 1928년에 성도가 설치되었다.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시되어 청대에는 쓰촨 총독 및 청두 장군을 이곳에 두었고, 중화민국 정부가 들어선 뒤 1930년에 시제를 실시하였다. 부근에는 사적이 풍부한데 그 중에서도 제갈량(諸葛亮)을 모시는 무후사(武侯祠)를 비롯하여 두보초당(杜甫草堂), 망강루(望江樓) 등이 있다.

항공, 전자, 강관, 제약, 면방직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농산물로는 유채, 참깨, 목화, 사탕수수 등을 산출한다.바오청(寶成) 청위의 2개 철도와 민장강(岷江)의 수운에 의하여 수륙교통의 요충을 이루며, 기후가 온화하고 물산이 풍부하다. 비단/칠기 등은 예로부터 유명하다. 중국 8대요리 중에 속하는 쓰촨요리가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교육기관에 쓰촨대학, 충칭(重慶)대학, 시난(西南)사범대학, 농업대학, 전문기술학교, 건축공정대학 등이, 관광지에 성립(省立)박물관, 다주석각(大足石刻), 남 온천공원, 두보초당(杜甫草堂) 등이 있다

都江堰(도강언)

약 2,200년의 역사를 가진 고대 수리시설 중의 하나로 역사적 가치 뿐 아니라 기술상의 우수함으로 세계적 인정을 받는 곳이다. 성도에서 57km에 떨어진 곳에 있는 도강언은 사천성 서북의 민강(岷江) 중상류와 타강(陀江)의 줄기가 갈라지는 곳에 있는데, 근교의 도교 성지인 청성산(靑城山)과 더불어 국가 중점 풍경구로 정해져있다.

이 수리 시설의 배공, 관계 등을 통해 사천성이 얻은 이익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천부(天府)의 나라라는 사천성의 풍부한 농작물의 생산을 받혀주는 기초가 되었다. 때문에 사천의 서북이 높고, 동남이 낮은 지리적 조건을 이용해 이 대수리 시설을 만든 촉나라 군수 이빙과 그의 아들 이랑은 사천성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왔다.

도강언은 크게 어취(漁嘴), 비사언(飛沙堰), 보병구(寶甁口) 세 부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어취(漁嘴)는 강 중심에서 물길을 나누는 제방역할을 하는 곳으로외강과 내강으로 나뉘어져 외강은 홍수 때 배수의 역할을 하고 내강의 물은 관개용수로 사용된다. 비사언(飛沙堰)은 방수역할을 하면서 수량조절을 하며, 보병구(寶甁口)는 물의 유입량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데 보병구 입구의 형태가 병의 목과 비슷하다하여 보병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쉬지않고 끊임없이 그들에게 맑은 물을 주는 도강언(都江堰)이 없었더라면 삼국지에서의 유비와 제갈량의 지략은 꽃 필을 수 없을 것이고 중국 최고의 시인이 이백과 두보의 주옥같은 시들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峨尾山(아미산)

사천성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명물. 아미산은 아미천하수(峨尾天下秀)라 불리며 낙산대불과 함께 전세계 18대, 중국 3대 자연문화유산 중 하나로 지정된국가급 풍경명성구다.또 성도에서 160㎞ 떨어져 있는 아미산은 오대산, 구화산, 보타산과 더불어 중국 4대 불교명산 중의 하나이다.

아미산은 사천성 아미산시에 있으며, 성도쌍유국제공항에서 130km, 낙산대불로부터 31km 떨어져 있다. 성도에서 차를 타고 접인전(接引殿 : 해발 2500m)으로 간 후 케이블카를 타면 금정(金頂 : 해발 3000m)까지 갈 수 있다. 예로부터 산중의 경관은 아미10경으로 알려졌고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킬 만큼 수려한 경관을 지니고 있다.

산 정상에는 세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금정, 천불정(千佛頂), 만불정(萬佛頂)이다. 이중 만불정이 가장 높은 봉우리로 해발 3099m다. 아미산은 지형과 생김새가 독특하고 생물, 토양, 기후대가 분명해서 동식물 자원의 종류가 풍부하다. 식물만 3000종이 넘으며 그 중에는 세계적 희귀종도 포함되어 있다.

아미산의 원숭이들은 직접 관광객이 지나다니는 골목에서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또한 그 생태환경과 자연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어 더더욱 아름다운 경관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그 중 일출, 운해, 불광(佛光), 성등(聖燈)이 가장 아름다운 아미산의 4대 기경(奇景)으로 꼽히는데, 그 중 불광은 햇빛이 일정한 각도로 구름층 위에서 발사되어 생기는 널리 퍼지는 현상이다. "금정양화(金頂樣光)"라고도 불리며, 아미산 10대 명관 중의 하나이다.

산정 부근은 11-3월간 평균기온이 0℃ 이하이며, 7월에도 12℃ 정도의 기온을 유지하는 추운 날씨이다. 또한 1년중 300일 이상이 구름이 많고, 비도 많이 내리며, 일조량이 적다. 여행객들 모두 불광, 운해 등의 경관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여행하는 시기의 날씨를 미리 체크하는 것이 좋다.

金沙遗址(금사유적지)

금사유적지는 선진시기 중요한 유적중의 하나로, 하나라 문명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국가문물국은 금사유적지에서 발견된 " 태양봉황 금박문양"을 "중국문화유산"의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武侯祠(무후사)

무후사는 중국 3세기를 풍미한 유비와 장비 관우 등 촉나라의 여러 명장을 거느린 전설의 전략가, 제갈공명, 그 제갈량을 기리기 위해 서진 영안 원년에 만들어진 사당이다. 무후사의 이름은 제갈량이 죽은 후의 시호인 충무후(忠武侯)에서 유래되었다.

경내로 들어가면 유비전과 제갈량전, 촉한의 문·무관 28위의 동상 및 '제갈고(諸葛鼓)'라 칭해지는 북, 동고(銅鼓) 등의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다. 유비전은 정문으로 들어가 최초의 건물인데 황금의 유비상이 안치되어 있고 벽에는 공명의 정치·군사상의 전략사항으로 유명한 융중대(隆中對)의 액자가 걸려있다. 관우, 장비 등의 문·무관 28인의 상은 옆 동(棟)에 있고 벽에는 그들의 문장과 업적을 기리는 액자와 연(聯)이 전시되어 있다.

제갈고는 공명이 남쪽을 정벌하면서 만든 것으로 낮에는 그것으로 밥을 짓고 밤에는 경보를 발했다고 한다. 또 무후사 뒤편에는 유비의 묘인 혜릉(惠陵)과 문장, 서법, 석각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꼽힌 당비(唐碑)가 있다. 무후사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삼국시대의 사당으로 여겨지며 1961년 국무원에 의해서 전국 중요 문물 보호단위로 정해졌다.

무후사가 정확하게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6세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존재하는 무후사는 청대 강희 11년(1672년)에 옛 터 위에 중건된 것이다. ◇ 제갈량에 대해...낭야군 양도현(琅句郡 陽都縣 : 山東省 沂水縣) 출생으로 자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후한 말, 관직에 오르지 않았을 때도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일컬어졌고, 207년 유비(劉備)로부터 초빙되어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진언(進言)하고 군신수어지교(君臣水魚之交)를 맺었다.

이듬해 오(吳)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를 대파하는 등의 수많은 전공(戰功)을 세워 221년 한(漢)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재상이 되었다. 유비가 죽은 후에는 어린 후주(後主) 유선(劉禪)을 보필하여 재차 오(吳)와 연합, 위(魏)와 항쟁하였으며 위와 싸우기 위하여 출진할 때 올린 《전출사표(前出師表)》, 《후출사표(後出師表)》는 이것을 읽고 울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일컬어질 정도로 천고(千古)의 명문으로 여겨진다.

錦里(금리)거리

중국 사천 성도(中國 四川 成都)는 삼국지로 유명한 촉나라의 수도.

이 성도시 남쪽에는 유비를 모신 한조열묘와 제갈량을 모신 무후사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 무후사 옆에는 최근 문화거리로 조성한 금리(錦里, Jinli)가 있다. 2004년 10월 오픈한 뒤 수천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진리(錦里)'라고도 불리는 상점가는 촉나라 시대의 거리를 재현해 놓은 민속촌 같은 곳으로 성도에서 유일하게 당시의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다.

금리에는 붉은색 도포를 입고 점을 봐주는 점쟁이나 인력거꾼을 비롯해 모자, 목각인형, 조롱박, 가면 등 관심을 끌 만한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즐비했다. 안쪽에는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점이 늘어서 있었다.

落帶古鎭(낙대고진)"

낙대진은 삼국(三國, Sanguo)시기에 벌써 도시었다. 전하는데 의하면 촉한(蜀漢, Shu Han) 후황제 류선(劉禪, Liuchan)의 옥대(玉帶: 과거 황제나 신하들이 허리에 띠고 있었던 옥으로 만든 허리띠-번역주)가 이 곳의 팔각정(井)에 떨어졌다고 해서 "낙대(落帶)"라는 이름을 가졌고 후에 "낙대(洛帶)"로 되었다고 한다.

청초 객가인들이 호북(湖北, Hubei), 호남(湖南, Hunan), 광동(廣東, Guangdong), 광서(廣西, Guangxi), 운남(云南, Yunnan), 사천(四川, Sichuan) 이주민을 따라 이 곳에 오면서 낙대는 중국의 서부에서 객가인들이 가장 많이 집중된 도시로 되었다. 낙대의 인구 중 객가인이 91%를 차지해 낙대는 "중국 서부 객가 제일의 도시"이다.

낙대진은 지금도 청조말과 민국초반의 풍격을 중심으로 한 "1가 7골목"의 구도를 보전하고 있다. 정교함과 독특함을 자랑하는 광동(廣東, Guangdong), 강서(江西, Jiangxi), 호광(湖廣, Huguang), 천북(川北, Chuanbei) 등 4대 회관건물과 객가회관, 객가 박물관, 객가공원, 낙대공원, 교회당 등 건물들이 조화롭게 자리잡고 있다.

"객가의 명 도시, 회관의 고향"으로 불리우는 낙대에서 청석길을 밟으며 고대 건물들 사이를 거닐거나 객가회관의 다방에서 민간전설을 들으면 낙대의 어제를 느낄 수 있다.

(학바위,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