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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미학 산책(정민)

haagam 2015. 11. 26. 09:45

 

 

서명: 한시 미학 산책

      -  한시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탐구한 우리 시대의 명저

저자: 정민

출판: 휴머니스트(1996.8.5.초판1쇄, 2010.11.29.개정1판3쇄,  695쪽)

 

  한시의 미학을 산책한다는 말은 얼마나 고품격인가? 제수씨가 지난 명절에 내게 선물한 책으로 만났다. 책 윗부분에 "ㅇㅈㅂㄴ"이라고 굵게 써 주셨는데 이를 풀어쓰면 "아주버님"이다. 700여쪽의 두툼한 책에 크지 않은 글씨로 빼곡하고 촘촘하게 한시를 풀어냈다.

 

   지은이 정민이야 우리시대 대표적 한학자이지만, 1960년생이 1996년에 책을 썼으니 당시 우리나이로 37세이고 2015년 지금 나이로도 55세이니 약관의 나이에 이렇게 훌륭한 책을 펴낸 저자가 부럽기만 하다. 젊어서부터 한 영역에 부단히 노력하여 이런 경지를 이룬다는 것은 누구나가 희망하는 바이지만 소심하거나 조급한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고, 또한 웬만큼 재능이 있어 스스로 가능성이 보일 경우에 더욱 가능한 일일 것이라 생각된다. 나로서는 어려운 일임을 완곡하게 말하는 셈이 되었다. 부끄럽다. 그러나 이런 책을 읽게 해준 저자가 고마울 뿐이다.

 

   나는 지금 겨우 앞부분 몇 단락을 읽고 있지만, 우선 이 책을 포스팅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 이렇게 적어본다. "두번째 이야기 그림과 시"의 중간 주제로 "말하지 않고 말하기"는 평소 우둔하고 고집스런 평면적이기만 한 내게 큰 반향을 준다.

 

 "그림과 시의 공통점은 머리와 꼬리만 보일 뿐 몸통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글자도 덧붙이지 않았으나 풍류를 다 얻었다. 당지 경물을 묘사했는데도 정의가 저절로 드러난다. 요컨대 한 편의 훌륭한 시는 시인의 진술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통한 객관적 상관물의 원리로서 독자와 소통한다. 시인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건네는 대신 대상 속에 응축시켜 전달한다."

 

유몽인(1559-1623)의 <어우야담>에 실린 시다. 한 사내가 나귀를 타고 가는 미인을 만나 그 아름다움에 그만 발길이 얼어 붙었다. 연정의 불길을 주체할 수 없어 그는 즉석에서 시를 써서 그녀에게 보냈다.

 

心遂紅粧去  마음은 미인을 따라가고 있는데

身空獨倚門 이몸은 부질없이 문 기대섰오(倚 의지할 의)

 

넋은이미 그대에게 빼앗겨 버리고 나는 빈 몸뚱이만 남아 문에 기대 서있다는 애교섞인 푸념에 그녀의 답장이 왔다.

 

驢嗔車載重 노새는 짐이 무겁다 투덜대는데( 驢 나귀 려, 嗔 성낼 진)

却添一人魂  그대 마음 그 위에 또 얹었으니 (却 물리칠 각)

 

여인은 나귀는 짐도 무겁다는데 그대 마음까지 얹게 되었다고 투덜대니... 결국 나를 향한 그대의 마음을 접수했다는 말이다. 젊은 남녀간의 사랑놀음이 이렇게 품격있는 것은 역시 이 글의 제목처럼 "말하지 않고 말하기"의 미학이다.

 

<두번째 이야기. 그림과 시(寫意傳神論사의전신론)>

 

1. 그리지 않고 그리기

 

홍운탁월법 烘雲托月法

수묵으로 다을 그릴 때 달은 희므로 색칠할 수 없다. 달을 그리기 윟 화가는 달만 남겨둔 채 그 나머지 부분을 채색한다.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 저것을 그리는 법으로 시에서도 시인은 간접적으로 의중을 전달한다.

성동격서聲東擊西와 같은 말이다.

 

2. 말하지 않고 말하기

 

시인은 할 말이 있더도 직접 말하지 않고 사물을 통해 말한다.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게 한다. 시인은 외롭다 말하면 안되고 독자를 외로움에 젖게 해야 한다. 괴롭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괴롭게 해야 한다.

시인이 시를 짓은 것은 무엇을 말하는 과정이 아니라 절제하고 걷어내는 과정이다.

 

사단의속辭斷意屬 말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진다.

 

아치볼드 매클리시 Archibald MacLeish, <시의 작법 Art Poetica>에서 "시는 의미해서는 안된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A Poem should not mean, But be" ; 시는 사실 자체를 진술해서는 안 되고 등가적이어야 한다. Poem should not be equal to/ Not true" 시는 이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의경을 전달해야 한다.

 

 

 

 

 

다시 좀 더 읽고 더 많은 이야기를 틈틈이 포스팅할 생각이다.

한시의 미학이여!

 

 

 

정민

1960년 충북 영동생

한양대 대학원 문학박사

한양대 교수

2011 제4회 우호인문학상 한국문학부문 수상

한국한문학회 연구이사
한국도교문화학회 부회장

 

한문학의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살아있는 유용한 정보로 바꾸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은 <비슷한 것은 가짜다>, <고전 문장론 연암 박지원>을 펴냈다. 18세기 지식인에 대한 연구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미쳐야 미친다> 등이 있다.

청언소품淸言小品에 관심을 가져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돌 위에 새긴 생각>, <다산 어록 청상>, <성대중 처세어록>, <죽비소리> 등을 펴냈으며, 이 밖에 옛 글에 담긴 선인들의 내면을 그린 <책 읽는 소리>, <스승의 옥편> 등의 수필집과 문학과 회화 속에 표상된 새의 의미를 찾아가는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등을 간행했다. 어린이를 위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를 펴냈고, 사계절에 담긴 한시의 서정을 정리한 <꽃들의 웃음판>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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