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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물건(김정운)

haagam 2012. 7. 10. 11:09


서명 : 남자의 물건

-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저자 : 김정운(여러가지 문제연구소 소장, 명지대 교수)

출판 : 21세기북스(2012.2.7. 1판1쇄/ 2012.03.29. 1판31쇄)

 

나는 속이 없고 귀가 얇아서 누가 그럴듯한 소리에 혹 넘어가는데 선수이다. 아니 1등가는 선수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김정운 교수의 책을 이번이면 3번째 사서 읽는 셈이다.

 

별 내용도 없고, 그냥 끄덕이게 하는, 조금 새로운 입장의 설명, 또는 조금 가려운 곳에 대한 위안 정도의 평범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책을 이번에도 잡아 읽으면서 이렇게 다시 책 얘기를 하게 되었다.

 

이 다음부터 읽지 말까 생각하지만, 김정운은 아마 다시 시선을 끌만한 제목과 내용으로 책을 포장하고 내용을 전개하여, 얇은 내 귀에 내 얘기 들어보라 자꾸 외쳐대면 나는 다시 읽지 않을 자신이 없다.

이 사람이 올해 나이 쉰이 되는 문화심리학자라는데, 이 사람은 요즘 남자들의 가려운 곳을 잘 간파하고 그 부분을 설명해 주고, 긁어주면서 위로해 주는 나름대로의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워낙 입담이 좋아 매스컴을 필두로 이곳저곳을 불려다니는 세간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한판에 몇권씩을 인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대체 출판 40여일 만에 31쇄를 하는 책을 써내는 사람이니 나로서는 매우 부러운 사람 중의 하나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저자의 말을 빌린다면 김정운은 자기 존재감을 확인받으면서 살아가는데 일단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나는 이 나이를 먹도록 김정운의 말처럼 나와 싸우느라 한 치 앞을 못나가고 한 평생을 다 보냈다.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독서를 통해 내 사유의 폭을 넓히고 생각을 표현하는 훈련을 하면서, 혹시 새로운 나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소박한 기대감을 갖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참 잘난 체 잘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불안한 한국남자들의 문제로 규명하고, 그 이유를 그들의 존재 확인에 둔다. 불확실한 존재로 인한 심리적 불안을 적을 만들어 분명히 하고, 적에 대한 적개심, 분노를 통해 내 존재를 명확히 확인한다. 전통적인 방법이다.

 

혹시 저자가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일이 남들보다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남자에게'라는 제목으로 여러가지 남자들이 갖는 공통적인 정서와 가정생활과 사회생활 속에서의 남자들의 스트레스를 달래주고 있다. 2부는 책의 제목처럼 '남자의 물건'이다.

 

첫편의 '늙어보이면 지는 거다'의 글을 조금 옮겨본다.

나이보다 늙어보이는 것은 사는 것이 재미없는 까닭이다. 정력적으로 살던 이들이 은퇴한 뒤 갑자기 늙어버리는 모습은 자신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위가 높았던 사람일수록 은퇴 후 일찍 늙는다. 나는 배꼽위로 올라오는 아저씨 바지는 다 버리고, 허리 아래쪽에 걸리는 청바지만 입는데 불편해도 참는다.

 

머리도 퍼머를 했는데, 그 후 내 행동은 사뭇 과감해졌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옷도 용감하게 사고, 가슴 큰 남자들만 입는 쫄티도 사 입는다. 어떻게든 즐겁고 재미있으려 노력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우울하고 허전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한 순간이다. 방심하면 한방에 훅 간다. 내 인생은 둘로 나뉜다. 파마하기 전과 파마한 후로..

 

한국 남자들의 고질병인 자기열등감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누구나 약점은 있다.

나는 욱하는 성질로 이웃의 마음에 자주 상처를 준다. 최근 결험모형에 기초한 현대 심리학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긍정심리학이다. 그동안 약점과 부정적 측면에 촛점을 맞춰왔던 현대 심리학의 접근방식을 인간의 약점을 고치기보다 각 개인의 장점을 키워가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잘난 척하거나 교만한 것은 그리 나쁜 게 아니고 가장 인간적인 덕목이다. 세상에 가장 무서은 것은 남과 비교하며 괴로워하는 자기 열등감이다. 자기 열등감에 한번 빠지면 웬만해서는 헤어나기 힘들다.

 

한국남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것이다.

내가 도대체 뭘 느끼는지 알아야 타인과 정서 공유가 가능할 것인데, 자신의 내면에 무지한 이들에게 나타나는 결정적인 문제는 판단력의 상실이다.

 

제발 나를 괴롭히며 싸워 이기려 달려들지 말자. 이미 충분히 많이 싸웠다.

 

나 자신은 절대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아니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설득해야 할 아주 착하고 여린 친구다.

 

새해를 맞아 이렇게 맘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한다. 내가 읽고 싶은 책만 읽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 남이 시켜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은 절대 안한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안 만난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엄청난 결심을 한 것만으로 나는 너무 행복해진다.

 

저자는 1부에서 이렇게 남자답지 않은 너스레를 떨다가 시치미를 뚝 떼고 2부를 시작한다.

 

2부의 남자의 물건에서 소개하는 물건들은 이어령의 책상, 신영복의 벼루, 차범근의 계란 받침대, 문재인의 바둑판, 안성기의 스케치북, 조영남의 안경, 김문수의 수첩, 유영구의 지도, 이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이다.

 

남자가 존재감 운운하면서 째째해지기보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통해 그것을 아끼면서 행복하게 지내기를 권하는 것이라 해석하였다. 김정운은 말한다. "시인은 딱히 하는 일도 없고 먹고 살기가 궁핍해도 어딜 가도 대충 품이 난다.

 

그러나 교수라고 하면 "아, 예!"하고는 아무 여운이 없다. 사진작가도 시인처럼 죽을 때까지 사진작가다. 전문가요 고급 카메라의 후광이 한몫을 한다.

한국남자들은 명함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심리학에서 아이덴티티, 즉 어떤 것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존재 유지의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 불안한 것이 없다. 사회적 지위는 순간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시인이나 사진작가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평생 갖고 다니는 일과 차이가 난다.

 

평생 써먹을 수 있는 직함에는 어울리는 삶의 방식이 있게 마련이고, 아울러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매개해주는 물건을 가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건에 대한 이야기가 자신만의 아야기가 된다. 자기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물건이나 도구가 자신의 쾌락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물건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사는 모습에 착안한다.

 

그럼 말은 없지만, 저자는 일이나 사회적 지위가 진정한 내가 아니고 내가 좋아하고 행복해지는 그 어떤 생활이나 물건이 자신일 뿐이며, 그를 지켜나가므로써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 어떠냐는 말을 하는 것이라 해석했다.

 

그러나 읽는 내내, 그리고 이 사람이 쓴 글을 읽을 때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배워온 동양철학과는 정말 거리가 멀어보이는 사람이다. 우리는 가정에서는 웃어른을 공경하는 효에 기본을 두고, 밖에서는 이웃을 공경하고 공손해 하는 敬경, 悌제 등을 가장 으뜸가는 덕목으로 살고 살아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착하고 고운 마음씨가 자연스럽게 가슴 속에서 공명이 되어, 이웃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평안해지는, 서양식으로 하면 큰 바위의 얼굴, 동양식으로 하면 군자가 되는 일, 불가에서 말하면 성불하는 일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삶의 자세라 생각하면서 지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지는 것이 이기는 일이 되고, 마음이 평안해진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런 접근에서 너무 멀어, 다소 남성의 본능적인 면, 심리적인 압박감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설명 등을 조금은 째째한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스스로도 남들이 나보고 잘난 체 많이 하는 사람이라 말한다 하고, 자기도 그냥 태어난대로 살겠다 말한다.

아내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거나, 남자의 물건 등 남자의 음흉스런 마음을 자극하여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이 시대에 사람들은 바쁜 속에서 왜 책을 읽는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국 만족감을 얻거나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독자를 헤아리지 않고 스스로를 자랑하며 잘난 체 하는 사람의 글은 독자를 평안하게 할 수 없다.

이 사람 책을 다시 사서 읽은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김정운

1962년생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베를린자유대 심리학과에서 '문화심리학' 박사

현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여러가지 문제 연구소 소장

<노는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 <재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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