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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나눔

새벽 단상,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haagam 2023. 1. 25. 04:46

지금 시각은 새벽 4시 13분이다. 나는 약 2시간전에 잠에서 깨었다. 깨보니 휴대폰 유투브에서는 <탈무드>를 낭독하고 있었다.

 

내가 켜놓고 잔 것은 아닌데, 지혜로우신 유투브 나리님께서 이리저리 헤매고 헤매서 나를 이곳까지 인도하신 것이다. 이 녹음은 어느 탁한 중년 남성 목소리인듯한데, 탈무드 낭독이 4시간짜리이다. 짧은 우화로 모아진 탈무드는 아이어른 할 것 없이 지혜의 샘으로 누구에게나 잔향이 있는 글모임이 아닌가. 문득 좋은 글을 읽어 손자들에게 선물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유투브를 대충만 살펴도 자료가 넘쳐난다. 자료는 많고 그냥 시간만 때우면 아이들 자장가로, 중장년의 수면제로 좋을테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녹음해서 올려놓은 것이다. 시장이 많으니, 차별화한다면 일정한 영역의 독자를 모을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밖에 나와 따듯한 차를 한 잔 마셨다. 난꽃향기차. 선물하신 분의 따듯한 마음을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이런 향차가 내키지는 않는다. 담백하고 구수하거나 어쨌든 무던하게 항상 마실 수 있는 차가 더 좋다. 향차는 때론 메스껍거나 부담스럽다. 나이탓인지.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을까 싶다. 향차가 그리 좋았으면, 중국 명차가 향차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대표적인 차는 역시 녹차이고 홍차나 철관음 그리고 보이차도 향이 진하지 않지 않은가? 차는 역시 은은하고 담백한 것이 본연이리라.

 

이 새벽에 잠에서 깨어 오디오북을 검색하고 듣다가, 문득 곧 여행할 동남아시아에 대한 인문지리 강의를 검색해서 들어보고, 이렇게 글을 쓴다. 이러다가 낮에 졸리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이내 든 생각은 그 때는 다시 자면 된다. 나는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낮과 밤의 부담에서 자유롭고, 내게 필요한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데 제한이 없는 진정한 자유인이다. 행복의 기준을 설정할 때 시간의 선택이 자유로운가, 더 낳은 사람,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학습하는가? 등의 척도가 있다고 들었다. 나는 이 모두를 갖고 있는 사람인 셈이다. 그럼 나는 행복한가? 먹을거리 걱정도 없고, 애들도 속 썩이지 않고, 나도 큰 병이 없이 늙어가는 느낌을 받을 뿐이고, 다만 아내가 아픈 것이 걱정이긴 하지만, 큰 걱정이 없는데 왜 나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욕심이다. 노욕으로 분수에 넘는 것들을 기대하고 눈만 높아서 내게 와 있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에 컴퓨터를 켜고 글을 적는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는 퇴직하면서 독서하고 글쓰는 사람, 사진찍고 여행하는 사람으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무엇이 부족한가?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만드는 가장 큰 범인은 바로 <게으름>이다. 혼자 있으면서 자꾸 나태해지고 안으로 오그라든다. 그러다가 미사를 드리거나, 여러 사람들 속에 함께하면서 나는 나태함에서 벗어나 다시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갖게되고 부리나게 메모지를 꺼내 이런저런 생각을 적어대곤 한다. 내 아이디어 중 많은 부분이 미사 시간 중에 떠오른 것이 많다. 나는 부산한 미사꾼인데, 어떤 때는 미사의 은총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밖은 영하의 추위라 한다. 어제 저녁 뉴스에서는 동장군이 2000년 이래 두번째로 독한 놈이 왔다고 한다. 영하 17도, 영하 20도가 넘게 추운 곳이 많다니 최근에 들어본 적이 없는 추위이다. 어제는 종일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은 얼마나 추울까? 내일은 가장 추운 날이라니 날이 밝으면 옷을 끼어입고 밖에 나가 봐야겠다. 겨울이 좀 춥기도 해야지. 들판에 벌레들도 좀 얼어죽고, 흠뻑 추워야 다시 봄이 따사롭고 싱그럽지 않은가. 

 

어제는 종일 논어를 정리했다. 7편 술이, 8편 태백을 마치고, 9편 자한을 한 반쯤 정리했다. 세 번째 정리인데 정리하다보면 두번째 까지의 내용이 너무 허술하고 그 내용이 엉망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래서 어떻게 논어 정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끄러운 일이다. 나이 칠십이 되어 논어를 공부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일천한 수준이라니. 그것도 평생 교단에 선 선생 출신이고, 공부도 할 만큼 한 사람이 아닌가? 말하고 보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저기 너무 호기심이 많다. 시골가서 농막 생활도 해야하고, 섹소폰 연주도 잘 하고 싶고, 장기 여행도 하고 싶고, 자전거도 즐기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성가대 활동도 재미있고, 신앙생활도 좋고 등등등 여기에 적지 못한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해 놓고 싶지 않는 애착이 있다. 언젠가 주식을 잘 공부해서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다.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싶기도 하다. 남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줄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수준급 섹소포니스트가 되고 싶다. 내게 가장 큰 문제점은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논어도 이 모양이고, 섹소폰도 이 모양이고, 모든 것이 이 모양이다. 어쩌나.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모여서 내가 되는 것을, 젊어서는 이런 일들의 소중함을 잘 몰랐다. 내가 속한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내 모두일 뿐인 아주 어리석고 가난한 사람일 뿐이지 않았던가. 이제 겨우 이런 일들을 조금씩이나마 맛보려는데 어떻게 깊이가 내려지고, 어떻게 한두가지에 전념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아둔해서 이들을 쉽게 익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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