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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 등반기(141025)

haagam 2014. 10. 25. 20:43

아침에 일어나 문득 카메라를 집어들고 산을 나선다.

매일 걷는 산행이지만, 자연은 늘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그래서 같은 길은 늘 다른 길이다.

가을 산행철이라는 것이 실감날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걷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수통골은 더할 것이라 앞서가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들었다. 

 

 

왜 사람들은 가을 단풍을 맞아 산에 오르는 것일까?

역시 단풍이 곱긴 곱고, 고운 단풍으로 물들은 가을 산을 걷다보면, 지난 여름을 생각나게 하고, 마음에 색다른 여유를 느끼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올라오는 사람들은 특정 영역으로 구분할 수 없다 아이들도 있고, 청년들도 있고, 아주머니도, 장노년들도, 가족도 있고, 연인도 있고, 나처럼 홀로 올라오는 사람도 있고..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다 산을 오른 셈이다.

 

 

나는 문득 봄에 새싹과 움으로 시작해서 진초록 여름에 담긴 인고의 세월을 딛고 지내다 이제 지난 날들을 정리하여 홀연히 자신의 자리를 마무리하는 단풍의 고운 자태를 생각해 보았다. 마지막 모습을 이리 곱게 장식하면서 떠날 수 있는 것은 역시 무더운 여름을 장열하게 지내온 자만이 누리는 위용일 것인가. 나무는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외롭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서 활활 마지막 정열을 불사르고 찬 바람과 함깨 홀연히 나무를 떠난다. 

 

 

나는 지금껏 외로왔고, 앞으로는 더 외로울 것이다. 나는 앞으로 그 외로움을 친구삼아 지낼 것이고, 나는 지금처럼 산속에서, 혹은 길 위에서, 혹은 섹소폰에 의지해서, 혹은 지금처럼 키보드 위에서, 또는 책과 함께 내 몸과 굳게 달라붙어 있는 외로움과 함께 할 것이다. 나는 그 외로움으로 더욱 나다울 것이고, 단정하고 정갈한 그러면서 단풍처럼 고운 모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단풍이 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의 향기를 품을 것이다. 아니 그러고 싶다.

 

산은 나무가 옷이다. 맨살을 보호하고 나름대로 철따라 자신을 가꾼다. 위 사진은 삼불봉의 모습인데, 삼불봉을 올라 지나서 뒤돌아 샷을 잡아 보았다.

 

카메라를 들고 올 때마다 산은 매일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산에 오르는 내 마음에 따라 카메라는 다른 장면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내게 산은 대부분의 경우 푸근함, 위용, 그리고 묵묵함, 그런 속의 숙연함 등의 느낌으로 카메라와 만난다. 그것도 카메라를 통해 드러나는 내 외로움일 것일런지. 사실 이런 느낌이 어찌 나 혼자만의 느낌이랴만은, 내가 간절히 희망하는 것은 그 외로움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길, 그리고 즐길 수 있길 희망한다는 것이다.

 

 

산에 오르는 일이 겨우 몸에 익어갈 즈음에 자연성릉과의 첫 만남은 감동이었다. 숨겨진 보물을 만나는 느낌이랄까. 이제 익숙하고 동네 산길처럼 무덤덤하기까지 하지만, 계룡 등반길에서 자연성릉을 빼고 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카메라는 내게 아직도 실험의 도구이다. P스위치에 놓고 찍어본다. 그리고 이리저리 샷을 변경해 보고, 또는 노출을 조정해 보기도 한다. 화면이 어두어 보여 노출을 더 주고 나서 사진을 보면 너무 노출이 심하다. A스위치에 놓고 찍어보면 맘에 들기도 하고, 너무 어둡기도 하다. 이렇게 저렇게 찍어보고 맘에 드는 것을 고르는 수준이다보니, 남의 사진을 책임지고 찍어주는 일은 아직 엄두내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포토샵 처리도 할 줄 모르니 내게 사진은 정말 카메라에서 나온 그대로을 올릴 뿐이다.

 

 

먼 거리라 해서 망원렌즈를 잡으면 당겨지는만큼 화각이 좁으니, 이렇게 가을 산의 정취를 듬뿍 담으려면 역시 표준렌즈를 사용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렌즈교환식 전문 카메라도 디지털로 모두 전환되어 CCD를 사용하지만, 디지털 카메라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모방의 원조는 역시 필름 카메라이다. 그런 입장에서 실제 사진을 웹에 올리기 위해 사진을 줄일 수 밖에 없지만, 촬영하는 순간 35밀리 CCD를 이용해 촬영하는 기분은 필름 카메라를 연상하게 하고 옛날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다.

오늘 내가 담아온 것은 내게 익숙한 외로움일까 가을 계룡일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단풍도 역시 햇살 속에서 더 곱다. 산 골짜기 속 조그만 기와집이 동학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