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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고미숙)

haagam 2012. 12. 20. 19:43

 

 

서명 :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저자 : 고미숙

출판 : 북드라망(2012.8.31. 개정증보판 1쇄)

 

 

이 책은 5년 전에 출판된 호모 쿵푸스를 5년만에 고쳐 새로 펴낸 책이다.

호모 쿵푸스는 공부하는 인간이라고 해석해야 할까.

저자는 사람의 학습에 대한 자연적인 본능 욕구를 빗대었는지,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로 부제를 달아 공부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일이라는 말을 표지의 부제로 달았을 정도로 공부하는 인간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하고 있다.

 

저자는 책의 전부분을 통해 신랄하게 기존의 학교교육,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패러다임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공부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생동안 모든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행해져야 할 공부가 학교의 전유물이 되고,

<공부라는 것이 원래 그를 통해 그를 통해 자신을 넘어서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공부가 진학과 취업의 수단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교육은 오로지 대학입시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고, 정작 대학에서도 학생들은 학점과 출석체크, 자격증 취득과 취업, 연애와 고시 이외에는 관심이 없고, 교수들은 회의와 프로젝트 말고는 하는 일이 없어, 정작 사제관계가 사라진지 오래라서 대학은 죽은지 오래라는 것이다.

패기에 찬 논쟁, 활발한 소통이 없는 대학은 더 이상 큰 배움터, 대학이라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 기존 교육에 대한 강력한 비판은 <학교 교육에서 독서와 공부를 별개의 것으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제갈량, 유비, 가난으로 고생하던 허생전의 허생은 사회에 나와 일약 큰 일을 단숨에 이뤄냈지만, 그들이 밖에 나오기 전에는 오로지 독서에 온 힘을 기울이던 서생이었다. 다만 독서를 했을 뿐이다. 독서야 말로 골방에 앉아서도 혹은 초야에서 밭을 갈면서도 천하고금의 이치를 한눙에 꿰뚫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이제 가문이 망했으니 네가 참으로 독서할 때를 만났구나."

 

연암 박지원의 말이다.

"군자의 아름다운 말 속에는 혹 뉘우칠만한 것이 있고, 착한 행실 속에도 혹 허물이 될만한 것이 있다. 그러나 글을 읽는 경우에는 1년 내내 읽어도 뉘우칠 것이 없으며, 백사람이 따라서 행하더라도 허물이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학교에서는 논술과 독서를 분리하여, 학교식 공부법은 애초부터 독서는 그저 개인적인 취미나 교양의 영역이고 공부는 그것과 달리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는 이분법을 유포시켰다.

 

그러나 공부와 독서가 분리될 수 없고, 독서와 글쓰기, 말하기를 치열하게 훈련하는 과정이 공부의 과정이 되어야 하고, 공부가 즐거운 일이 되어 노는 일이 공부하는 일과 통할 때 공부도 진정한 놀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카프카가 말했다. "추상적인 자유란 없다. 다만 지금 나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문턱이 있을 뿐. 그 문턱을 넘어설 때 비로소 그만큼의 자유의 공간이 열리는 법이다." 이것이 공부를 통해 넓어지는 식견의 자유, 그런 과정이 진정한 공부가 아닌가.

 

가령 지금 10대들은 게임과 포르노에 전면 노출되어 있는데 이 둘의 공통점은 치명적인 중독성에 있다. 한번 붙들리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것, 그것이 바로 억압이고, 이때 자유란 그 억압에서 얼마나 저항할 수 있는가? 그에 맞서 얼마나 능동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는 법이다.

 

결국 요즘 대학생들은 단군 이래 가장 책을 읽지 않고, 유사 이래 글쓰기를 가장 못한다. 아니 책을 통한 인생의 탐구라는 발상 자체가 없을 뿐더러 지성의 광장에서 왜 글쓰기가 그렇게 중요한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독서와 논술을 톻한 공부를 통해 주어진 문제에 답하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주도적이란 말 그대로 <자시의 힘으로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독서력이란 책에 대한 욕망과 능력을 말하는데, 학생들은 이 힘을 기르는데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데 골몰한다. 논술도 마찬가지다. 글이란 모름지기 내 존재의 심연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보의 조합이나 이미지의 짜깁기라는데 문제가 있다. 자기주도적이라는 것조차도 이미지가 되고 정보가 된느 시대, 범람하는 정ㅂ의 늪에서 모두가 저오로부터 소외되는 것이 정보화사회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근대 이전 학인들은 스승을 찾아 천하를 떠돌았다. 그 시절에는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스승의 문하에 들어감을 의미하였고, 그 스승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다는 발심이 공부의 출발이었다. 부처님을 따르던 무수한 제자들과 공자의 문도 3천명이나, 주희의 강학원을 찾던 5천명의 학인들, 양명의 뜰에 모여든 개성 넘치는 문사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만은 문파 소의 문하생들은 가르침을 받기 위해 불원천리하고 찾아드는 학인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았다.

 

근대 이전 배움터란 기본적으로 코뮌 commune이었다. 스승, 도반, 청정한 도량으로 이루어진 앎의 코뮌, 코민이란 기성의 권력과 습속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집합체 혹은 네트워크를 말한다.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그 코민에 접속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공부는 멘토를 만나는 것, 네트워킹이 중요하다. 그래서 논어에서 공자는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열호아!"라 했을까?

저자는 공부와 독서의 일치한다는 말이외 암송과 구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은 진정한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공부가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현재 공부에 시달리면서도 그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의 학교 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읽으면서 속을 시원하게 하는 통쾌한 위안을 주고 있다.

 

 

 

고미숙

1960년 강원도 정선

고려대 대학원 국문학박사

감이당 연구원

수유너머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