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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나눔

영월 답사기

haagam 2012. 4. 23. 13:26

영월에 다녀왔다.

동강 래프팅으로 유명한 곳, 한번 조용히 돌아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영월군은 스스로를 '지붕없는 박물관, 창조의 도시'라 부른다.

아주 한적한 강원도 시골인데도 곳곳에 모텔이 많은 것은 아마 래프팅 등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영월은 단종의 얼과 혼이 숨쉬는 곳이다. 12세에 왕위에 오른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청령포에 유배된 후17세에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하여 이곳에 묻혔으니영월을 제외하고 단종을 말할 수 없다.

단종이 처음 유배되어 지낸 곳이 청령포이고, 2개월 쯤 살다가 여름 홍수가 범람하여 관풍헌에서 지내셨다. 그가 돌아가셨으나 아무도 돌아보는 이가 없던 중 영월 호장 엄흥도가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장릉에 모셨다. 능주위의 소나무가 모두 능을 향해 절하듯 굽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영월에서 단종(1441-1457)의 이야기는 청령포부터 시작해 보자.

세조는 즉위 3년인 1457년 6월 28일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시키고 처음 이곳으로 유배시켰다.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은 험준한 암벽이 곳아 있어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당시 첩첩산중이었을 이곳을 서울에서는 어찌 알고 유배지로 정할 수 있었을까? 어린 소년의 유배지로서 세조의 마음에 꼭 들었을 장소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입구로 내려오는 길은 아무도 없이 우리 일행 2명 뿐으로,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는데 2명 뿐인 것이 걱정이었다. 위에 보이는 배가 청령포에 데려다 줄 배이다.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일행은 우리 둘 뿐이어서, 과연 승선이 가능할지 걱정이었는데, 막상 내려가 보니 건너야 할 곳은 바로 코 앞이었고, 배은 수시로 왕복하고 있었으며, 2천원 입장료가 무료인 유공자 등에게 부과되는 도선료는 2백원이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입구로 내려오는 길은 아무도 없이 우리 일행 2명 뿐으로,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는데 2명 뿐인 것이 걱정이었다. 위에 보이는 배가 청령포에 데려다 줄 배이다.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일행은 우리 둘 뿐이어서, 과연 승선이 가능할지 걱정이었는데, 막상 내려가 보니 건너야 할 곳은 바로 코 앞이었고, 배은 수시로 왕복하고 있었으며, 2천원 입장료가 무료인 유공자 등에게 부과되는 도선료는 2백원이었다.

단종의 유배처를 중심으로 주위 수백년 생의 거송들이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 있다. 특히 천연기념물인 관움송은 단종이 걸터앉아 말벗을 삼았다 해서 불리어진 이름이며, 수령이 600년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이다.

위에 보이는 그림이 청룡포 전면으로 소나무가 울창하다. 뒷편이 서쪽으로 높은 산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림의 우측에서 좌측으로 물이 동그란 원을 그리며 흐른다. 이상한 것은 영월 동강과 서강의 흐름이 매우 구비구비 원형을 이루며 흐르는 곳이 많다는 것이었다.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되어 묶었던 단종어소, 그리고 관음송, 노산대 망향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소는 그 규모가 매우 작고 단정하였다. 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초가지붕을 한 궁녀와 하인들이 살던 작은 방 서너칸과 부억이 있고, 정면으로 보이는 기와집이 어소이다.

어소는 정면 5칸, 측면 2칸반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세워졌으며, 부속건물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우진각 지붕 형식으로 초가로 세워져 있다.

1726년 영조2년 영조는 단종 유배지를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금표비를 세웠다.

고개를 숙이고, 단종의 애사를 같이 보았다는 관음송이다.

노산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단종어소 우측으로 높은 바위를 노산대라 하고, 이곳에 올라 서울을 바라보며 그리워했다 한다. 2개월을 살다가 홍수 범람으로 이곳을 떠나셨다는 말이 기억이 남았다.

다음은 장릉이다.

정면에서 본 장릉의 모습이다. 작고 아담하다.

세조 2년(1456년) 집현전 학사 성삼문, 박팽년 등의 상왕 복위 사건(병자옥사 丙子獄事)로 참형당하고, 다음해 6월 21일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의 길을 걸으셨다.

세조 3년(1457년) 단종의 6째 삼촌인 금성대군이 다시 단종복위를 꾀하던 것이 발각되자, 단종은 폐서인되어 그해 10월 24일 사사되니 그의 나이는 17세였다.

아무도 그의 시신을 돌보는 사람이 없던 중 호장 엄흥도가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이라면 달게 받겠다.'며 단종의 시신을 이곳에 밀장하였다.

영월의 또 하나의 명물 선돌을 보았다.

영월 먹거리로는 특별한 것이 없다.

시골이라서 한우의 맛이 깊고 저렴하며, 깨끗한 물에서 잡은 다슬기 요리, 그리고 곤드레밥 등이 유명하다.

다슬기음식을 하는 식당은 역전 근처에 모여 있었다. 우연히 들른 집은 비교적 명성을 얻은 집으로 아침인데도 손님이 제법 많았다.



(학바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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