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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후보자가 `자기결단`해야 할 때 (조선일보 아침논단 퍼옴)

haagam 2009. 9. 24. 16:37

박효종 서울대교수 ·윤리교육과

자신이 살아온 삶을 청문회 거울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결과가 별로라고 해서 거울을 깨려고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지난 며칠 동안 인사청문회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인사청문회가 도덕군자를 가리는 자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공직자에게 있어 윤리는 삼손의 '머리털'과 같은 것이다. 삼손의 거대한 힘이 그 머리털에서 나왔기에 머리털이 깎인 삼손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도덕성이 부족하다면 공직자는 힘을 잃고 권위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도덕적 흠결을 가진 당신의 영(令)이 서겠는가" 하는 물음이야말로 공직자 윤리의 핵심이다.

왜 공직자에게 도덕성이 중요한가. 공직이란 능력만으로 가늠하기엔 너무나 엄숙한 자리다. '난사람' 못지않게 '된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다. 여기서 임명직이냐, 선출직이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공직자는 자신의 일보다 다른 사람, 즉 국민을 대변하여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묻는다. 누가 '나'를 대변해 일해 줄 것인가. 숲 속의 동물들은 사자가 대변하기를 바랄 뿐, 토끼가 대변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꼴뚜기가 어물전을 대변하고자 한다면 망신만 살 뿐이다. 모과처럼 못생긴 과일이 어떻게 과일 일반을 대변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나'를 대변할 공직자는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이어야지 남이 한다고 덩달아 위장전입을 하고 부동산 투기를 하며 세금을 탈루한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또 공직자는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사람이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공직자가 결정하면 정책이 되고 그 정책은 구속력을 갖는다. 이처럼 막중한 자리인 만큼 후보자가 평소에 어떤 몸가짐으로 살아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나중에 공직자가 되어 어떤 태도로 자신의 권위를 행사할지를 알아보기 위해 과거의 행적을 샅샅이 훑어보는 것이다.

사실 이번 청문회에서도 '관행'이 핑계 겸 화두가 됐다. 법에 어긋나는 행위임에도 남 하는 대로 별 생각 없이 했다면 관행이 기준이 되었다는 의미다. 일반화된 관행의 경우 좋든 나쁘든 특별히 죄의식을 느끼기란 어렵다. 또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오래전의 관행을 현재의 엄격한 잣대로 가늠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고쳐야 할 정도로 낡은 관행이라면 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그런 것들이 인사청문회에서 걸러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 청문회는 끝나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공직자가 되려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민 앞에 얼굴을 떳떳이 들 만큼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번 청문회에서 드러난 의혹이나 흠결을 가지고 국민 앞에 설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 이 문제는 여야 간의 정파적 문제도 아니고 진보와 보수를 따지는 이념의 문제도 아니며 오로지 국가품위에 관한 문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어떻게 국리민복에 헌신할 수 있겠는가. 총리든 장관이든 마찬가지다. 실로 오래전에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한 죄가 드러나자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스스로 눈을 찔렀다. 눈이 있으되 진실을 보지 못한 죄를 속죄하는 의미에서 봉사가 되고 왕좌에서 스스로 내려와 방랑의 길을 떠난 것이다. 이번 청문회에 임한 사람들은 아직까지 정식 공직자는 아니고 공직후보자일 뿐이니, 그런 점에서 결단은 좀 더 홀가분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청문회를 창과 방패로 비유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잘못된 비유다. 국민의 머슴을 가리는 자리인데, 누가 창이고 누가 방패란 말인가. 또 "죄 없는 사람만이 돌을 던지라"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총리 후보나 장관 후보를 질책하는 국회의원들 중에 위장전입이나 세금탈루가 있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하는 식의 반문이다. 그러나 청문회를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청문회는 공직자의 윤리뿐만 아니라 국가의 윤리를 바로 세우는 자리다. 즉 국가의 정기를 공동으로 확인하는 자리라는 말이다. 누가 공직의 부적격자인지를 가려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품격수준을 점검하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공인받고자 거울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자신의 모습이 별로라고 해서 거울을 깨려는 사람이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번의 공직 후보들은 청문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의혹이나 흠결에 대해 정략적 계산에 분주한 여야의 하회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판단하여 거취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자신들이 섬기겠다고 공언했던 국민에 대한 도리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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