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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나눔

제주 성지 순례

haagam 2015. 9. 29. 10:38

 

 

제주도에 있는 성지들을 순례하게 되었다. 2015.8.28.~2015.8.30의 2박 3일을 첫비행기를 타고 출발하여 제주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오는 꼬빡 3일의 순례였다.

 

제주도의 성지는 모두 6곳으로 그 내역은 아래와 같다.

1. 황사평 성지-성직자 순교자 묘역

2. 대정성지 - 정난주 마리아의 묘

3. 순교자 김기량(펠릭스 베드로)

4. 용수성지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제주 표착 기념 성당.기념관

5. 세미 은총의 동산 - 성 이시돌 센터

6. 추자도 황경한의 묘

 

이 6곳을 동시에 모두 순례하는 일은 보통의 경우 어려운 일이다. 여러 날이 필요하고, 또한 추자도 황경한의 묘는 일기관계로 계획한 날에 갈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3일동안 신부님을 가이드로 미사와 안내를 받으면서 하는 순례 기회란 녹녹치 않은 일이다. 추자 공소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그곳 신자들이 많이 와서 고해를 했는데, 나중에 신부님 말씀으로는 3개월 전 주임신부님이 오시고는 이제껏 신부님 미사를 드리지 못했다니... 요즘도 이런 일이 있다.

 

제주 성지는 1801년 신유 박해와 깊은 관계가 있다. 18세기 말 당대 최고의 실학자였던 정약전, 정양종, 정약용 형제들은 그들이 명문가의 혈통을 이어받았으며 매우 총명한 사람들로소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이들이었는데, 하느님의 말씀을 모시면서 시대와 갈등을 겪고 순교하는 역사적인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다.

 

1773년에 태어난 정난정 마리아는 이 형제 중 맏인 정약현의 딸로서 그의 어머니는 경주 이씨로서, 이나라 신앙의 선조인 이벽의 누이이다. 정난정의 아호는 명련命蓮이다. 1790년 18세에 그녀는 황사영의 부인이 된다.

 

정난정의 신랑 황사영은 1775년(정난정보다 2년 어림)에  유명한 남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대 최고의 수재로서 약관 16세에 초시, 17세에 복시에 장원급제하여 정조대왕으로부터 칭찬과 학비를 받은 장래가 촉망되는 소년이었으나, 천주교를 신앙하므로써 현세적 명리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 중국인 주문모 신부에게 세계를 받고 전교에 전력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가 일아나자 충북 제천의 배론으로 피신하여 그 유명한 황사영 백서帛書를 쓴다. 당시 천주교 박해의 실장을 소상히 기록하여 북굥에 있는 구베아 주교에게 발송되기 직전에 발각된 이 백서에는 당시 천주교의 박해실상을 소상히 기록되어 있었으며, 이로 인해 황사영은 동년 음 11월 5일에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형으로 순교하였다.

 

그 결과 어머니 이 윤혜는 거제도로, 처인 정난정 마리아는 제주도에 그의 아들 경한은 추자도에 각각 귀양을 가게 된다. 정난정 마리아는 1801년 11월 21일에 두살 난 아들을 품에 안고 귀양길에 올랐다. 그녀의 나이 28세이다. 추자도에 이르러 어린 아들과 생 이별하는 아픔을 겪는다. 추자도에 격리된 아들은 어부 오씨에 의햐 하추자도 예초리에서 키워졌으며 그 후손 중 일부는 지금도 추자도에 살고 있다.

 

일설에는 정난주 마리아가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아갈 것을 염려한 나머니 아들 황경한을 추자도 예초리 바닷가 갯바위에 내려놓고는 사공들에게는 죽어서 수장했다 말했다고 한다. 아이의 울음을 듣고 찾아온 어부 오씨에 의해 황경한이 키워졌으며 성장하여 혼인하고 아들 둘을 낳았다. 지금도 하추자에서는 오씨와 황씨가 서로 결혼하지 않는는 풍습은 이곳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제주도 관노로 정배된 정난정 마리아는 온갖 시련을 신앙으로 이겨냈으며, 그 와중에서도 풍부한 학식과 교양으로 주민들을 교화시키므로써 비록 노비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할머니'라고 불리우며 이웃의 칭송을 받으며 살았다. 오직 하느님만을 삶의 유일한 위안으로 삼고 살았던 그녀는 37년동안 하느님께 봉헌하던 삶을 살다가 1838년 음 2월 1일 65세에 병환으로 숨을 거두자 이웃들이 유해를 이곳에 안장하였다. 대정성지이다.

 

 

위 사진은 정난주 마리아의 묘이고, 아래 사진은 추자도 황경한의 묘이다. 황경한은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기회가 되는 후손들은 이곳을 떠나 살았다고 한다. 최근에 두 아들이 영세를 받았다는 소문도 들었다. 부모를 생각하면 아들도 무척 영특한 재능을 갖고 태어났으리라 생각된다.

 

 

제주 올레길 중 18-1코스는 추자도 올레이다. 추자도는 제주로 가는 기에 바람을 피하는 후풍도였다. 전라남도에 속해 있다가 제주도의 일원이 된 것은 100여년이 되었다. 풍광도 제주와는 자못 다른 느낌을 준다. 추자도와 제주도 사이에는 유배인들이 마지막으로 관복을 벗던 관탈섬도 있다. 모든 갯바위가 낚시 포인트라 할 정도로 낚시의 천국으로 불리운다.

 

추자도에는 최영장군 사당, 추자 처사각, 나라론 절벽, 묵리 고갯길, 모진이 몽돌 해안, 엄바위 장승, 추자 등대, 황경헌의 묘, 예초리 기정길, 채우 체험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일부를 걸었지만, 진정한 힐링을 맛볼 수 있는 자원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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