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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허영인 회장의 도전 인생

haagam 2015. 9. 2. 15:43

 

 

 

 

나이든 사람들에게 삼립빵처럼 추억에 어린 것도 없다.

보리밥만 아는 소년기에 그 달콤한 밀가루맛이란 지금 생각해 봐도 군침이 흐른다. 보름달 카스테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리고 나서 우리는 격변의 시대를 바쁘게 살면서 이런저런 일들로 삼립빵을 잊고 살아왔다. 문득 삼립식품 상속을 장자 중심으로 했다는 이야기와 "제빵왕 김탁구"의 실존 모델이 삼립식품의 허영인 회장이라는 말 정도였다.

 

만일 프랑스 회사에서 우리나라에 김치 전문 음식점을 창업해서 성공한다면 어떻게 생각될까? 우리가 빵의 본고장인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우리 기술로 빵장사를 한다는 것도 그 사람들에게 그런 느낌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허영인 SPC그룹회장의 변화경영이 최근들어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983년부터 SPC그룹을 이끌어 온 허 회장은 외부환경에 한발 앞선 '변화경영'으로 국내 베이커리 업계의 선두 주자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부친인 고 허창성 회장이 창업한 SPC그룹의 전신인 삼립식품은 해방 후 먹거리가 부족한 한국사회에 크림방, 호빵, 보름달 등 어린 시절 추억 어린 간식의 대명사로 각인시킨데 이어 샤니를 1970년대 당시 고급 제빵 수요의 증가에 맞춰 고급 케익제품으로 론칭했다.

 

허회장은 1980년 중반 국민소득의 성장에 앞서 프랑스풍 고급 베이커리 파리바케뜨를 론칭한데 이어, 1990년에는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베스킨라빈스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특히 베이커리 시장의 분화를 주도한 던킨도너츠는 1998년 이후 현재까지 연평균 20%이상의 성장률을 나타내고 있다.

 

허회장은 따고난 운명과 더불어 어려서부터 빵을 좋아하고, 빵 만들기를 즐겼다. 1949년에 태어나서 한국전쟁 이후어머니의등에 업혀 고소한 빵 냄새를 맡으며 성장기를 보낸 허회장과 제빵산업은 운명적으로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회장은 학창시절부터 밤이면 생산현장에서 밀가루 반죽이 구소한 빵으로 만들어지는 공정 하나하나를 빼놓지 않고 들여다봤다. 대학에 가서 가장 먼저 하버지 허창성 선대회장을 졸라 중고 승용차를 구입하고 서울 곳곳을 다니며 시장조사를 한 일화는 유명하다.

 

허회장은 미국 제빵학교를 수료하면서 빵에 대한 전문성을 싸아 어려서 부터 터득한 제빵에 깊이를 내리게 되었다. 평소 초고 경영자는 경영 마인드 만으로는 부족하며 기술 마인드, 즉 엔지니어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SPC품질경영의 기본이다.

 

수시로 생산현장을 누비고 수십명의 석박사로 구성된 식품기술연구소 직원들도 원료부터 완제품의 모양이나 향기에 이르는 허회장의 세세한 지적에 진땀을 흘리곤 한다고 전해진다.

 

현재 SPC의 브랜드는 1945~1970의 삼립식품에서 1971~1984의 샤니로 이어지고, 1985~1997 사이에 파리크라상, 파리바게트, 베스킨라빈스로 확대되며, 1998~2004 사이에는 던킨 도너츠, 파스쿠찌, 리나스 로 베이커리 시장을 세분화하고, 2005년 이래 패션5, 퀸즈파크, 파리크라상 키친, 라그릴리아, 빋는, 잠바주스 등으로 웰빙 트렌드와 고급 외식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창업주인 초당 허창성 명예회장이 고향인 황해도 옹진에서 상미당을 연 것은 1945년이었다.  1948년 서울로 옮겨 연료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한 무연탄 가마를 개발해 값싸고 품질좋은 제품을 만들어 일대 선풍을 일으켰다. 이에 1959년 삼립제과공사로 사명을 변경하고 용산에 공장을 설립했고, 이후 1963년 서울 신대방동에 공장을 마련해 제과제빵의 산업화에 박차를 가했다. 1968년 삼립식품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꾸고 1970년대 국대 100대 기업 반열에 올랐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정책에 따라 소득수준이 높아지자 1970년을 기점으로 소비자들은 맛있고 질 좋은 빵을 요구하자 삼립식품은 변화 대응에 나서 1971년 광주 공장을 준공해 이곳을 중심으로 고급 ㅋ익을 생산 판매하는 한국인터내셔널식품(주)(샤니의 전신)을 설립했고, 이후 고급 제팡 기업으로 자리잡으면서 고급 베이커리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그 후에도 허회장은 86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외식산업의 다변화를 예상하고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1985년에 세계적인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베스킨라빈스를 도입한다. 이와 함께 1980년대 들면서 소비자의 고급 취향에 맞춰 신선한 이미지의 제과점인 윈도우베이커리 형태가 제빵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 나간 점에 맞서 SPC그룹은 1976년에 명동에 샤니으 집을, 1984년에 후레쉬나를 베이커리 점포로 론칭했다.

 

이어 푸레수나 이상의 고급 브랜드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1986년에 프랑스풍 정통 고급 빵을 즉석에서 직접 구워내 고객에게 제공하는 파리크라상 반포점을 개점하고, 1988년에는 파리바게뜨 광화문 가맹점을 오픈했다. 현재 프랜차이즈 대표기업으로 전국에 5500개의 가맹점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역시 변화경영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허회장은 성공의 원동력은 완벽한 제품 차별화에 있다고 말했다. 파리바게트 베이커리 프렌차이즈,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사업은 모두 후발 사업이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차별화의 노력이었다. 임직원들에게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찾으라'고 말하는 허회장의 사훈은 '창의적 도전'이다.  1949년 황해도 웅진에서 출생하여, 1972년 경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도에 삼림식품 사장이 되었다. 1982년 8월 미국제팡학원 AIB 연수, 1994년 태인.사니 그룹 회장이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의 빵을 세계 시장에 알리겠다는 목표로 해외 시장에 적극적이다. 2004년 첫 해외진출에 문을 연 중국에서 100여개의 파리바게뜨 매장을 낸 데 이어 지난 해 7월에는 허 회장이 그토록 염원하던 프랑스 시장에도 진출했다.  빵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의 파리바게뜨 매당을 당당하게 성공시킨 것이다.

 

자랑스러운 한국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