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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자전거
내 인생의 화양연화 본문

새로운 이름, 새로운 시작
공직에서 퇴임한 지 10여 년, 나는 올해 세종시청 마을기록문화관 소속의 ‘마을기록가’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삶을 시작했다. 2018년 대전에서 세종으로 이주했을 당시, 내가 알고 있던 세종은 연기군 조치원읍 정도였다. 그러나 눈앞에서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의 풍경을 보며,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세종에 대한 사전 지식은 부족했지만, 오히려 이주민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종은 새롭고 흥미로웠다. 낯선 도시였지만 호기심과 기록에 대한 욕구가 나를 움직였다. 향토문화라는 생소한 영역에서 자료를 찾고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조금씩 이 도시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주제들
내가 처음 선정한 글감은 **‘용을 품은 마을, 금남’**이었다. 금남면 마을 행사에 우연히 참여하여 향토연구가 임○○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은 금남면에 유독 상서로운 기운을 상징하는 ‘용(龍)’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는 점을 소개하며, 그 지명들이 모여 오늘날 행정수도 세종을 품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그 이야기가 인상 깊어 금남면지를 찾아 읽고, 강의 내용을 다시 정독하며 지도에서 지명을 하나하나 검색해보았다. 정부청사가 길게 이어진 모습은 마치 용이 몸을 틀며 흐르는 듯했고, 호수공원은 그 끝에 찍힌 화룡점정처럼 느껴졌다.
세종시민이라면 한 번쯤 흥미를 가질 만한 이야기라 생각했고, 그렇게 나의 첫 기록이 시작된 것이다.
조애중의 『병자일기』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주제다. 춘성부원군 남이웅의 부인인 남평조씨 조애중은 병자호란 당시 63세에서 67세에 이르는 고령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붓을 들어, 자신이 겪은 일과 내면의 감정을 소상하게 기록했다. 이 『병자일기』는 현재 세종시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기록에는 병자호란 와중의 피난 생활, 세자를 따라 심양(瀋陽)에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며 가솔들을 이끌고 농사를 짓고 집안을 꾸려야 했던 대갓집 안주인의 강인한 모습이 담겨 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 심양에 억류된 남편의 귀향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곳곳에 배어 있다. 특히 친아들과 며느리의 죽음을 비롯해 가족, 친척, 노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부재와 상실에서 오는 충격과 슬픔을 진솔하게 토로하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기록을 다시 세상에 소개하는 일은 단순한 과거의 재조명이 아니라, 그 삶의 숨결을 오늘의 시간 속으로 되살리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그 기록을 통해 나는 조애중이라는 한 여성의 강인함과 인간적인 깊이를 고요히 마주할 수 있었다.
부강의 만석꾼 김재식의 고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조선 말기, 부모상을 당한 뒤 3년간 시묘살이를 했고, 천주교 신자로서 주일마다 청주로 나가 미사에 참여했다. 41세에 종9품 창릉 참봉으로 관직에 입문한 뒤, 1년 만에 정3품 중추원 의관, 다시 1년 후 종2품 가선대부, 또 1년 후에는 왕실 살림을 관장하는 내장원경으로 승진했다.
1906년 의친왕 귀국 후에는 궁내부 특진관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고택은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중부지역 거점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김재식의 삶과 고택에 얽힌 이야기는 단순한 부유함을 넘어, 시대의 흐름과 신념, 역사적 의미를 함께 품고 있어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밖에도 충 • 효 • 열의 정려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거나, 조천의 홍수 범람을 막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규모 방죽을 쌓은 공으로 지금도 조천변 도로를 '허만석로'로 명명한 유래를 밝히는 등등 올 한 해는 온전히 마을기록가로서의 한 해였다.
기록의 책임, 기억의 가치
기록가로 활동을 시작하며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보니, 세종시청 홈페이지는 물론 수많은 블로그에서 유사한 답방기들이 넘쳐났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일이 과연 의미 있는 작업인지, 정말 필요한 일인지 고민도 들었다. 그러나 그 글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다른 사이트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잘못된 정보가 반복되는 사례도 있었다.
나는 시청의 공식 사이트에 게재된다는 책임감을 갖고,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 국사편찬위원회, 세종문화원, 조선왕조실록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자료는 물론, 읍·면·동에서 발간한 면지와 읍지, 현장 방문과 관계자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글을 작성했다. 글의 말미에는 참고 자료를 명시해 신뢰성을 높이고자 했다.
그렇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본 자료의 차별성이 드러났고, 공공기관의 기록으로서 충실함과 신뢰감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세종시에는 국가지정 및 시지정 문화유산은 물론, 다양한 문화유산자료들이 보존·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물론 인근 주민들조차도 이러한 유산을 무심히 지나치기 쉽다. 특히 문화유산자료는 시에서 공식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은 수준의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하기에, 별도의 예산을 들여 후속 연구를 진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시민들의 자발적인 관심과 참여, 그리고 민간 차원의 연구가 절실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문화유산뿐 아니라, 세종시 곳곳에는 과거 누가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가문의 집성촌 내력,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나 풍습 등도 함께 소중히 보존되어야 할 자산이다.
화양연화는 과연 언제일까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를 함께한 주역으로서 숨 가쁘고도 보람된 시간들이었다. 나는 언제나 호기심을 품고 공부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고, 늘 앞만 보고 달려온 여정이었다. 그 과정마다 보람과 영광의 순간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날들은 꽃처럼 화려했다기보다,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야만 했던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일을 내려놓고 뒤를 돌아봐도 좋을 시점이지만, 나는 여전히 호기심으로 세상을 기웃대고 있다. 서툰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배낭을 메고 세계 곳곳을 여행했고, 논어 학습서를 개발하기도 했다. 지난 주일에는 제주도 자전거길을 완주했고, 지금은 마을기록에 깊이 빠져 있다.
호기심과 건강이 유지되는 한, 내 인생은 여전히 화양연화의 연속이다. 나는 지금도 나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학바위,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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