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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평전:시대공감(최열)

haagam 2014. 1. 22. 11:26

 

 

서명 : 박수근 평전, 시대공감

저자 : 최열

출판 : 마로니에북스

 

 

 박수근, <노상>, 13*30 cm/ 하드보드에 유채, 1962

 

위 그림은 미술품 경매회사 K옥션이 실시한 경매에서  추정가 9억-11억원에 출품돼 열띤 경쟁 끝에 10억4천만원에 낙찰되어, 국내 미술품 경매의 근현대미술품 중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였습니다.

 

박수근,<시장의 여인들>, 28*22 cm, 1960, 캔버스에 유채, 

 

이 작품은 2012년 2월23일 서울옥션의 제100회 경매에서 9억1천만원에 팔렸다. 이 그림은  바닥에 함지박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여인과 아이들의 모습을 세련된 구도로 배치해 한국적인 미감을 살린 작품으로, 박수근 특유의 화강암 같은 바탕 질감도 우수하지만 향토적이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주는 서민들의 삶이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박수근 <빨래터>

 

그 유명한 박수근의 <빨래터>이다. 2007년 5월 서울옥션경매에서 45억2천만원에 낙찰되었다. 박수근은 어렵고 고달픈 시절을 힘겹게 살다간 대표적인 서민화가이다. 6.25 동란 중 월남한 그는 부두 노동자로 일하거나, 미8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의 예술철학은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과 진실한 삶의 내면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시골집과 나무, 절구질하는 아낙네, 집을 지키는 노인, 아기 업은 소녀 등 서민적인 삶의 모습을 암벽에 음각하듯 화폭에 아로새겼다. 그의 작품은 초기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일관성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바로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법 면에서 보면 1950년대 초까지는 대상을 검은 윤곽선으로 그리고 윤곽선 안쪽은 일률적인 색채로 처리해 화면 자체가 극히 평면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195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두껍게 쌓아올려진 색층을 통해 깊은 색조가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마티에르는 서로 응고되면서 구조화 되어갔다. 만년의 작품에서는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단계에 돌입하여 마멸된 화강암의 표면을 보는 것 같은 거친 질감만이 남게 되었다. 기름기를 걸러낸 거칠거칠한 표면층은 우리 자연의 건조한 풍토와 연결되며, 또한 한 시대의 감정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런데 국민의 도서관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상하게 빨래터의 그림이 서로 다른 것을 발견하였다.

채색이 다르고, 구성도 다르다. 아래 빨래터는 여인이 허리를 반쯤 구부리고 서있는 모습이다. 위의 그림은 여인이 6명이고, 아랫 그림은 5명이다. 모든 그림에서 여인들은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있는 점이 동일하고, 그림 제목처럼 빨래를 하기위한 냇물이 가운데를 흐르고 있는 탄탄한 구성을 하고 있다.


박수근이 오늘날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는 이유는 서구의 화풍을 답습하던 당시의 한국 화단에 화강암을 연상시키는 기법과 같은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고, 그러한 독창성을 통해 한국인의 서민적 생활상과 정서를 집약적으로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유학파들처럼 모더니즘의 기표 위에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에서 그림의 소재를 불러냈으며, 삶의 지층을 다지듯 물감을 쌓고 굳히고 두텁게 하는 방법으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창출해냈다.

“나의 그림은 유화이긴 하지만 동양화다”라는 박수근의 말처럼, 유화이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는 화강암처럼 거친 듯 소박한 한국미의 전형이 느껴진다. 그는 1959년부터 1964년까지 국전 추천작가로 활동했으며, 1962년 제11회 국전에서는 서양화부 심사위원을 지냈다. 그는 1965년 간경화와 응혈증이 크게 악화되어 5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 간 그는 사후에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다.(두산동아백과)

 

 

 

박수근朴壽根은 1914-1965(51세), 강원 양구 출생이다. 회백색을 주로 쓰면서, 단조로우나 한국적인 주제를 소박한 서민적 감각으로 다루었다(위키백과) 그는 정규교육과정을 밟지 않고 양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했다. 그가 태어난 양구에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있다. 2002.10.25.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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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1956년 전북 무주 출생, 전주, 서울, 대전, 광주에서 성장함

중앙대 졸업, 미술사 전공

광자자유미술인회, 미족미술협의회,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엣서 화동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가나아트 편집장, 가나아트센터 기획실장, 문화재청 전문위원

현재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한국근현대미술사학히 회장, 고려대 서울대 강사

<김복진><한국근현대미술의 역사><한국군현대미술사학><박수근평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