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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자전거
내가 시를 쓰고 있는데 아내는베란다 화초에 물이나 주라고 하네 내가 시를 쓰고 있는데 아내는은행이나 다녀오라고 하네 내가 시를 쓰고 있는데 아내는슈퍼마켓에나 다녀오라고 하네 내가 시를 쓰고 있는데 아내는설거지나 도와 달라고 하네 내가 시를 쓰고 있는데 아내는화장실 청소나 하라고 하네 아니, 도대체 내가 지금시를 쓰고 있다는데! 월간 (2020년 10월호)

선생이 호는 송암이요 시조는 고려조의 개국공신인 태사 충헌공 포음 휘 정필이며 분관시조 결성 장씨 결성부원군 25대손으로, 부친 유강원 참봉 장석환공과 모친 부안임씨의 둘째아들로 1894년 음 1월 23일 충남 연기군 동면 송용리에서 태어나셨다.선생은 유족한 참봉집에서 부족함이 없이 윤택한 유소년 시절을 보냈으나, 17세 때인 1910년 8월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국권을 강탈당하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고 조국 광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셨으며 독립을 위해서는 교육에 힘써 많은 인재를 통해 민족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고 굳건하게 키워나가는 길 뿐임을 늘 역설하셨다.선생은 유학의 전통이 깊은 명문의 후예지만 신학문에 뜻을 두고 30대 중반에 연기군 동면 송용리에 있는 육영재 또는 송동서숙서당에..

(앞면) 80장년 心地을 기르고/ 性天을 가꾸는/ 우리의 배움터/ 작은 제비둥지 燕東己未萬歲의 喊聲이/ 아직도 琤琤한/ 1925년/ 여기 작은 제비둥지/ 연동이 자리한다.이 작은 학당에/ 구름같이 모여드는 學徒들/ 80長年/ 그 긴 세월에/ 학술인도 예술가도 정치가도 실업인도 법조인도 군인도...모두 여기서 배우고/ 모두 여기서 자라고/ 모두 여기서 꿈을 불태웠다. 이 작은 제비둥지에서/ 이 땅의 名士들이/ 줄줄이 태어나연동동문 이란 이름아래/ 8000여 인재가/ 하나되는 운명, 그 攝理부귀도 영화도 예서 움텃고/ 영광도 공명도 예서 피어나/ 연동이란 모교의 깃발아래 우리의 운명이 열리고/ 黃龍이 승천했다는 龍池도/ 봉황이 坐定했다는 碧梧桐도이제는 전설 속에 아득하고/ 태백의 정기가 氣脈을 타고/ 계룡의..

세종시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崇禎丙子日記>는 63세의 노부인이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병자, 인조14년)부터 4년여에 걸쳐 거의 매일 한글로 적은 일기라는 점에서 매우 신기하고, 여전히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란 조선 인조 때 좌의정을 지낸 춘성부원군 시북(市北) 남이웅(南以雄)의 부인인 정경부인(貞敬夫人) 남평 조씨(南平 曺氏) 조애중이 병자년(인조14년, 1636) 12월부터 경진년(인조18년, 1640) 8월까지 4년 가까운 기간 동안 한글로 기록한 필사본 일기이다. 이때 조애중은 63세부터 67세에 이르는 노년의 나이였다. 일기를 통해 병자호란의 와중에 겪은 피난 생활, 세자를 따라 심양으로 잡혀간 남편을 기다리며 가솔들을 이끌고 농사를 짓고 집안을 이끄는 대갓집 안주인으로..
부강 부자 김재식의 문집으로 송암집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키워드를 송암집으로 구글링을 해 보면 의외로 너무 많은 기사가 나온다. 과거 "송암"이라는 제호의 문집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조선 후기의 학자, 강필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1년에 간행한 시문집이 있고, 조선 후기의 학자, 이재형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58년에 간행한 시문집 이름도 송암집이다. 16세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박제현의 시문집도 송암집으로 검색되고, 권호문(權好文, 1532(중종 27) ~ 1587(선조 20)) 지은 문집도 송암집이다. 기정익(1627~1690)의 문집도 송암집이다. 1936년에 초간되고 1998년에 중간(重刊)된 공주 출신 문인 최종화의 문집도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부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