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자전거

기록의 힘, 조애순의 병자일기 본문

여행과 사진

기록의 힘, 조애순의 병자일기

haagam 2025. 4. 9. 09:50

"숭정병자일기" 표지, 우측에는 "춘성부원군남상국부인수택"으로 저자 표시가 되어있다.(출처: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

 

세종시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숭정병자일기崇禎丙子日記>는  63세의 노부인이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병자, 인조14년)부터  4년여에 걸쳐 거의 매일 한글로 적은 일기라는 점에서 매우 신기하고, 여전히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병자일기>란 조선 인조 때 좌의정을 지낸 춘성부원군 시북(市北) 남이웅(南以雄)의 부인인 정경부인(貞敬夫人) 남평 조씨(南平 曺氏) 조애중이 병자년(인조14년, 1636) 12월부터 경진년(인조18년, 1640) 8월까지 4년 가까운 기간 동안 한글로 기록한 필사본 일기이다.

 

이때 조애중은 63세부터 67세에 이르는 노년의 나이였다. 일기를 통해 병자호란의 와중에 겪은 피난 생활, 세자를 따라 심양으로 잡혀간 남편을 기다리며 가솔들을 이끌고 농사를 짓고 집안을 이끄는 대갓집 안주인으로서의 모습, 일찍 죽은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과 심양에 억류되어 있던 남편의 귀향에 대한 간절한 바람 등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친아들과 며느리의 죽음에서부터 가족, 친척 또는 노비 등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죽음과 부재에서 오는 충격과 슬픔을 일기 곳곳에서 진솔하게 토로하였다.

 

남평조씨는 1574년(갑술, 선조7년)에 태어나 1645년(을유, 인조23년)에 72세로 병사하였다. 한 살 아래인 남이웅과 17세에 결혼하여 56년을 해로하고 남편보다 3년 먼저 죽었다.

 

원본에는 "숭정 병자일기(崇禎丙子日記)"라고 되어 있으나 "병자일기"로 통칭된다. 참고로 제목 앞부분의  "숭정(崇禎)"은 중국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의 연호(1628-1644)이다.

 

특이할 점은 약 380년전인 1636년(병자년, 인조14년) 12월부터 1640년(경진년) 8월까지 4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쓴 일기라는 점이다.

 

병자일기의 시작점인 1636년은 병자호란이 일어난 해로, 이 전란에서 완패하므로써 조선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고 초고 지배층부터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수모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일기는 1636년 12월 병자호란이 발발하지 지은이가 황급히 피난길에 오르는 장면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드라마틱하다. 저자 조애중은 인조 임금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간 남편 남이웅으로부터 빨리 피란 가라는 전갈을 받고 한밤중에 서둘러 가족들과 피난길을 나서는 것으로 일기는 시작한다. 

병자일기 본문 일부(출처: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

 

"....저물 때에 일봉이가 남한산성으로부터 나오면서 영감의 편지를 가져왔다. 그 편지에 기별하시기를 일이 급하게 되었으니 짐붙이는 생각지도 말고 밤낮으로 청붕으로 가라고 하셨다. 쉬고 있던 대복이에게 말(馬)을 거두게 하고 선탁이와 대복이에게 양식을 찧게 하여 그날 삼경(자시, 밤11시~1시) 쯤에 길을 나서니 덕생이는 그렇게도 울면서 함께 가겠다고 하였으나 아이를 낳게 도었으니 길을 가다가 아이를 낳으면 죽을까하여 거기있는 종에게 피란하라고 하였다...."(1636 병자년 12월 17일 일기 일부 발췌) 

 

그 후 지은이 남평조씨는 서산, 당진을 거쳐 여산, 충주 등지에서 고단한 피란생활을 하게 되고, 남편 남이웅은 대사헌, 형조판서, 한성판윤,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다. 따라서 병자일기에는 병자호란과 그 후의 여러가지 정치적 사건들과 그에 얽힌 뒷이야기도 적지 않다.

 

일기의 주를 이루는 것은 노부인 남평조씨가 전란 중에도 변함없이 꾸려가는 일상의 내용이다. 그녀는 대단한 기록벽을 갖고 있었던 듯 병자호란이라는 극심한 혼란과 피란 등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기록을 이어간다.

 

피난길에서 겪은 각자지 어려움과 친척들과의 교류, 심양에 억류되어 있는 남편을 걱정하는 안타까운 심정과 죽은 자식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 종들을 데리고 농사를 지으며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접대하는 일들, 그리고 남편이 무사하게 귀환한 기쁨과 그 후의 남편의 관직 생활의 자세한 사정과 그 이면의 이야기 등 지은이 개인사 뿐만 아니라 당시 사대부가의 생활상과 나날의 삶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녀의 병자일기는 내용에 따라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대략 난중피란기, 여산체류기, 충주체류기, 서울귀환기이다.

 

병자일기 복원 처리 전후 사진(출처: 박경주의 논문)

 

 1)난중피난기는  병자호란으로 급히 피난길에 오른 병자년 12월 15일부터 서산, 당진 등을 거쳐 난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여산으로 거쳐를 옮긴 1637년 정축년 3월 16일까지이다. 전잰 발발의 급박한 상황과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른 피난길에서 겪는 갖가지 어려움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날이 새도록 길을 가니 서리와 눈이 말 위에 온통 얼어붙었다. 청호(淸湖) 큰 길에 다다르니 군사들이 오른다 하므로 청호 작은 길로 오다 걸어오던 두 집의 종 여덟 명과 난추와 천남이를 길을 잘못 들어 잃고 아침이 되도록 찾지 못했다. 길마다 피란하는 사람들은 끝이 없고 길이 여러 방향으로 났으니 어디로 갔는지 몰라서 온 집안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웠다. 마을에 들어가 아침밥을 먹고 종들을 다 흩어서 찾으나 찾지를 못하고 민만하기를 어찌 다 말하랴."(병자년1636년 12월 17일 , 박경신 저 병자일기 14쪽)

  눈 속에서 밤을 새워 피난을 가는 힘든 와중에 가족 몇 사람을 잃고 안타까와하는 상황이다.
 
2)여산체류기는 1637년 정축년 3월 17일부터 1638년 무인년 1월 25일까지가 해당된다.
친척들의 따듯한 보살핌 속에 여산에서 머무른 시기로 친척들은 따듯하게 대해주지만 정작 조애중은 심양으로 떠난 남편을 걱정하고 죽은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내용이 이 시기의 일기에 많이 나타난다.
 
"맑았다. 여주 며느리의 생일다례를 지냈다. 젊은 사람들이 먼저 죽어서 나로 하여금 이런 일을 보게 하는가? 이 늙은 몸이 설워하게 하는가? 영감을 집에 모시고 있을 적에는 슬픈 기색도 보이지 않고 지냈는데, 만리이역이 이런 시절을 만나 들여보내고 이 늙고 병든 몸이 외로이 있어 밤낮으로 속을 태우며 실낱같은 인생이 견지며 지내나. 천남이를 심양으로 배나고 나면 그 후에는 더욱이 어찌 견딜까? 제 아내를 매일 밤이 깊도록 데리고 지내니 이들 아니면 어찌할까?"(정축년 1637년 7월 29일, 박경신 편저 병자일기 39쪽)

죽은 며느리의 생일다례를 지내면서 느끼는 슬픔과 이역만리에 있는 남편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 주변 사람들의 따듯한 배려에 대한 고마움 등이 교차되어 잘 드러나 있다. 겉으로는 여유있고 안온해 보일 수 있지만, 지은이에게는 죽은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과 남편에 대한 걱정이 그칠 날이 없다.
 
3)충주체류기는 1638년 무인년 1월 26일부터 같은 해 5월 28일까지로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과 농사를 지으며 집안을 꾸려가는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맑았다. 어제 못다 삶았던 벗고개 논을 오늘 둘이 가서 마저 삶고 나머지 집의 종들은 고기잡이를 갔다. 고기를 잡아서 천계의 제사에 쓰려고 한다. 밤의 꿈에 영감도 뵈었으나 잡몽雜夢이라 내 마음이 번거롭다. 용수가 돗골 논 열너 마지기와 또 두 마지기를 병작竝作으로 하기로 하고 씨를 가져갔다."(1638 무인년 4월 4일, 박경신 편저 병자일기 82쪽)
 
종들의 농사일을 관리하는 것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을 것 같은데도 지은이는 큰 어려움 없이 이를 잘 처리하고 있다.

4)서울귀환기는 1638년 무인년 5월 29일 이후이다.
심양에서 풀려나 서울로 돌아온 남편이 충주에 있는 자신을 부르자 몇 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다. 남편은 여러 중책을 맡아 분주하고, 부인 조애중 역시 남편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이 시기의 기록들은 다른 시기들과 달리 남편의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한 기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떤 날은 남편의 일기를 대신 쓴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아침에 흐렸다. 승지 허계가 새벽에 와서 다녀가시고, 영안위와 남참봉도 와 다녀가셨다. 남영암이 가시는데 동관왕묘에 오이 안주하여 나가셨다가 술을 조금 잡숫고 오후에 들어오셨다. 신시(辛時) 쯤 되어서 비가 오고 우박이 많이 왔다.(이하 생략)" (1638 무인년 10월 10일 일기, 박경신 편저 병자일기 108쪽)
 
날씨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면 다른 부분들은 모두 남편의 행적에 관한 것이다. 이 시기 일기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병자일기의 문학적 가치를 고찰하면 우선 우리 문학사상 사가(私家)의 부녀자가 쓴 한글 일기로는 최초이자 최대 분량이다.  지은이와 연대가 분명한 최초의 여성 실기문학(實記文學)이라는 중요한 문학사적 의의와 함께 진솔하면서도 뛰어난 표현으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작품은 일기이므로 기록된 날짜가 곧바로 창작연대가 된다. 정축년에는 윤4월이 있었고, 경진년에는 윤정월이 있어 만 3년 10개월간의 기록이며, 병자년은 지은이 나이 63세, 경진년은 67세인 해이다.

또한 병자호란이라는 대 전란과 이어지는 혼란기를 그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일기에 담긴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병자일기는 <향토연구>5집(충남향토연구회, 1989)에 자료가 소개되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충남문화재전문위원 김영한(金英漢) 선생이 남이웅 종손의 집에서 발견하여 공개했는데, 우연한 경로로 자료를 접한 역자는 거의 밤을 새워가며 읽었다고 한. 전란 중의 촘촘한 일상의 풍경은 물론, 자식을 잃은 노부인의 절절한 내면 토로에 깊이 공감하고 빠져든 탓이다.

 

이후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확보해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보관해온 유물 68점을 세종시립민속박물관에 기탁한 것이다. 남이웅(1575∼1648년)은 세종시의 대표적인 역사 인물로서 그의 영정을 비롯한 이번에 이관된 유물은 남이웅 영정과 영정 초본, 인장, 교서 및 남평 조씨 병자일기 등 시 지정 문화재 16점을 포함해 의령 남씨 집안과 관련된 각종 고문 서류다.

 

남이웅은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 17세기 역사적 사건 때 공을 세우고 이조판서와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낸 세종시 출신의 역사인물로, 신주가 금남면 남산영당(문화재자료 제7호)에 모셔져 있다. 본래 세종시 금남면 소재 남평조씨의 남편 남이웅의 영정을 모신 남산영당(세종시 유형문화재 7호)에 서 소장되었다. 이들은 그동안 국립공주박물관에 보관해 왔는데 병자일기를 비롯한 남이웅 관련 유물 68점을 23.10.25. 세종민속박물관으로 이관하였다.

박경선 역주 "노부인, 일상을 기록하다_병자일기" 표지

 

  이후 곧바로 전형대님과 박경신님이 현대역에 착수하여 <역주 병자일기>(예전사, 1991)를 펴냈으나 절판되고, 전형대님이 유명을 달리하신 후 박경신님이 다시 <노부인, 일상을 기록하다_병자일기>가 출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병자일기를 정리하면서 내내 궁굼했던 것은 "이렇게 지독한 기록광이 하필 병자일기만 남겼을까?" 하는 나머지 기록에 대한 것이었다.

 마침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인 문희순의 논문인 "조애중의 병자일기 배접지에 기록된 제문과 간찰"(2016)에 따르면 이 <병자일기>는 조애중의 6대손 남필복이 조애중의 일기 중 병자년의 호란을 중심으로 발췌하여 장착하고 표지를 붙인 것으로 그 싯점은 조애중의 사후 140여젼 후라고 말하고 있다. 문희순의 연구에 의하면 조애중의 6대손 남필복은 그가 제작한 이 발췌본에 표지는 배접을 하고, 제목은 "숭정병자일기(崇禎丙子日記)"라 쓰고,  저자로 
"춘성부원군남상국부인수택( 春城府院君南相國夫人手澤 "이라 적은 것이다.

 

 380여년전에 사망한 일개 사인(私人)의 기록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과 호기심이 왕실의 기록에 못지 않다는 것이고, 특별한 창작물이 아닌 일상의 소소한 기록들도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준다는 점은 매우 의미로운 일이다.

그녀는 아직도 우리 곁에서 기록으로 살아있는 셈이다. 기록의 힘이다. 

 

참고자료

박경신(역주), "노부인, 일상을 기록하다_병자일기"(나의 시간, 2015)

문희순, "조애중의 병자일기 배접지에 기록된 제문과 간찰(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6)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 https://sejong.grandculture.net/sejong)

"네이버 지식백과:병자일기"

 

(학바위, 2025)

 

이 글은 세종시 마을기록문화관 누리집 "다담"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