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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자전거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김수영) 본문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淫蕩)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 야전 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悲鳴)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 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 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 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난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김수영)
*
김수영
ㅇ1921.11.27~1968.06.16.(47년)
ㅇ서울특별시 출생
ㅇ데뷔: 묘정의 노래(1945년, 24세)
ㅇ학력
- 의동공립보통학교(연도 없음)
- 선린상업고등학교(~1941)
- 도쿄대학 중퇴(연도없음)
- 연희전문학교 중퇴(~1946)
ㅇ경력
- 선린상업고등학교 영어교사
- 평화신문사 문화부 차장
ㅇ수상
- 2001 금관문화훈장
- 1999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20세기를 빛낸 한국의예술인
- 1958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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