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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나눔

군자는 자리를 가리지 않는다

haagam 2021. 4. 30. 13:34

이른 봄의 세종 호수공원

 

  세종으로 이사온 날이 2018년 4월 말일이니 지금 나는 세종에서 3년을 생활한 셈이다. 3년을 살아보고 지낸 이야기를 적으려니 내가 정말 정착을 한 것인지, 정착이란 무엇인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대전에서 30여년을 살다가 문득 퇴직을 했다. 내 퇴직이야 정년 퇴임이니 예견된 일이니 문득이랄 수 없지만, 내가 <문득>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퇴직 이후의 생활이 현직에서 예견하던 것과는 너무 다른 상황으로 느껴진 때문이다.  퇴직이란 정말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달라지는 일이었다. 그런 중에  우연히 세종에 거주할 집이 생기고, 두려움 반과 호기심 반으로 무작정 세종으로 이사 온 것이 어느덧 3년이 되었다. 아주 오래 전인 듯 아련한 느낌이다. 새 아파트를 살아보고 싶다고 기회만 되면 얘기하던 아내의 말에 핑게로 둘러대 위안을 삼았다.

 

  "그래 최소한 아내가 노래하던 새 아파트 살아보기 원은 풀어주게 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세종살이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선 어디를 봐도 시멘트 뿐인 푸석거리는 삭막함과이나, 아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큰 변화였다. 주일 날 성당에 가보니 주보에는 주일 미사 참석자 수가 1,500명이 넘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한 사람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전에 다니던 성당에서는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하나 생기면 찾아가서 인사를 하던 환경과는 너무 달랐다. 

 

  그 뿐인가. 전에는 집에서 걸어 나가면 바로 코 앞에 백화점과 대형 양판점이 있었고, 집 주변 길가에는 다양한 상가가 나를 유혹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웬만한 곳을 시간에 정확하게 데려다 주는 지하철도 집에서 도보 10분이면 탈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지하철은 커녕 버스도 매우 간간이 다닌다. 상가나 집 주변 길가를 걸어 보아도 아는 사람은 커녕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도무지 낯설었다.  작년 캐나다 한달 살이가 생각나곤 했다. 그곳은 그래도 길가에 숲이 우거지고 아파트가 아닌 주택 중심이라 하늘이 열려있지 않았던가. 

 

  아는 사람은 곁에 있는 아내가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내는 어떻게 지내는지 눈치를 보게 되고, 내심 불안하고 미안했다. 나는 무조건 이것저것 좋은 점만 둘러대며 시치미를 뗐다.

 

  이사와서 얼마동안은 너무 삭막하고 무료했다. 차를 몰고 무작정 공주를 갔다. 내 발이 멈춘 곳은 <공주국립박물관>이었다. 가는 도중 낯선 낯선 길 양 옆의 푸른 논밭과 들판 그리고 먼 산을 바라보기도 했다. 어디서나 박물관은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준다. 나를 평안하게 해 주는 것은 무령왕의 위엄이나 왕비가 입었던 복식의 화려함이 아니었다.

 

  당시 한성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의 침략으로 나라가 어려워서 서울을 뒤로 하고 어렵게 웅진 백제로 둥지를 틀었다는데 ,약소국의 어려움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도 열강에 둘러 쌓인 상태의 분단 국가로 여전하지 않은가. 1200년 전 그분들이 사용하던 <분청사기 조화선 문완>이나 <귀얄접시> 그리고 <각진병> 등을 보노라면 그 속에 담겨진 이야기가 궁굼하다. <연화문원 와당>은 완만한 원형의 부드러움과 거친 흙이 주는 수더분하고 편안한 느낌이 불편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이 기와를 빚고 굽던 토공은 당시 몇 살이었을까? 이 기와는 어느 집의 막새 노릇을 했을까? 이 분청사기는 무엇을 담았을까, 누가 사용했을까 등을 생각해보면 한참을 서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래 다 알고 있어."

 

  공주를 뒤로 하고 다시 낯선 시멘트 도시 세종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래된 백제 유물들이 나를 토닥이며 위로하곤 하였다.  마음이 조금 푸근해지기도 하고, 시골에 계신 노모님을 뵙고 오는 느낌이랄까. 위안이란 어떤 해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서러운 마음을 알아주기만 해도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위안인가. 그냥 알아준다는 것 만으로 우리는 얼마나 쉽게 울컥해지던 경험이 많지 않은가?

 

  정착이란 무엇일까? 이사 온 이후 낯설음이 없어짐, 소통할 이웃이 생김, 전에 살던 곳과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됨, 새로 이사온 곳을 좋아함, 새로운 생활에 기대감을 갖게 됨 등등? 

 

  나는 시청 홈페이지를 기웃대다가 행정안전부에서 운영하는 <생활공감정책참여단>으로 활동하게 되고, 문득 2년전인 7기에는 세종시 대표가 되고, 이번 8기에는 전국 운영위원회 위원장이 되기도 하였다. 성당에서는 전처럼 성가대 활동을 하고, 대전 성당에서 처럼 다시 책임을 맡게 되었다. 문중 일은 토지 수용이나 묘역 조성 등으로 여전히 바쁘고, 지금 이 글을 올리는 곳에서는 주민자치를 지원하는 일에 2년째 봉사하고 있다. 

 

  구역회를 통해 아파트 입주민들도 알게 되고, 불편하지만 집앞 버스도 웬만큼 횟수가 늘어 참을만하다. 이제 인터넷 쇼핑은 전문가가 되어 <쿠팡>이나 <알리익스프레스>도 익숙해졌다. 나의 생활이 전과 비슷한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바빠지고, 새로운 환경에서 일거리도 생기는 등 전에 없던 활기도 생긴 셈이 된 것이다. 

 

  최근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 청바지를 사 입었다. 평생을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다니던 내게는 매우 혁명적인 일이었다. 집에서 입다 밖을 나와도 어색하지 않고, 셔츠를 바지에 넣지 않고 풀은 채로 쟈켓을 입어도 어색하지 않다. 매일 입어도 괜찮은 기분이다. 요즘 나는 성당에 가거나 센터에 갈 때에도 부담 없이 청바지를 입는다.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다.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마음으로 더 젊은 생활을 창조하고 싶다.  

 

 논어 자한子罕편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구이九夷에 거주하고자 하자 사람들이 그곳의 누추함을 걱정했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가 사는 곳에 무슨 누추함이 있을 것인가." 그렇다.  사실 사람이 어디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어디에 살더라도 나를 지켜가고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다시 나를 키워갈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내 자리일 것이다. 

 

  더구나 세종은 비록 시멘트 인공 도시라지만 한편 사이사이 녹지 공간과 쉼터가 있고, 웬만한 곳이면 자전거로 다가갈 수 있는 도시, 동네마다 커뮤니티 센터가 있어 도서관과 주민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나를 키워주는 정말 쾌적한 도시가 아닌가. 농촌과 도시가 어우러지는 맛이 나는 도시. 이제 나는 다른 곳으로 출타한 후 세종으로 돌아오면 이 깔끔하고 쾌적한 세종이 좋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세종정착기 응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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