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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나눔

황사영 백서

haagam 2015. 9. 13. 23:03

 

 

충북 제천 봉양의 배론성지에 있는 황사영 백서를 찍은 사진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훨씬 좋은 사진들이 있는데, 이 백서를 보관하는 토굴이 너무 어둡워 사진을 찍는데 노력이 필요했는데 어느분이 휴대폰 컬러라이크를 켜 주어서 얼른 찍다보니 그나마 이렇게 나왔다. 매우 작은 글씨가 깨알 같이 촘촘하게 가득한 것이 단숨에 자신의 울분을 토로하는 서정적인 글이 아니고, 매우 치밀하게 계획해서 마련된 글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게 하였다.

 

백서帛書의 帛은 비단을 의미하는 말로서 비단에 적은 글이라는 의미이다. 황사영이 천주교의 신유박해의 참혹함을 청나라 북경교구 주교에게 알리기 위해 1801년 순조1년에 적은 밀서이다. 가로 62cm, 세로 38cm의 흰 명주에 작은 붓글씨로 적었는데, 모두 122행 13,311자로 구성된 장문이다. 서론, 본론, 결론과 대안제시의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나는 이 글의 내용을 정확히는 아직 공부하지 못했지만, 황석용이 1971년 정조 15년에 17세의 몸으로 진사에 합격하여 시험관을 놀라게 하고 정조로부터 그의 학문적 재능에 대해 칭찬과 학비를 받을 정도로 매우 명석했다는 것, 지금도 존경의 대상이 되는 실학의 대가 정약용의 맏형 정약전의 사위라는 점 등이 관심을 갖게 하였다.

 

 백서의 내용이 다소 편협하거나 과격해서 이 글이 발견되었을 때 상식적으로 정약용이 용서받기는 어려웠다는 얘기가 있다. 그는 한양으로 끌려와 처형당하고, 어머니는 거제도로 아내는 제주도로 아들은 추자도로 귀양을 갔다.

 

특히 이번에 제주 성지 순례 중에 황석영의 부인 정난주(명련, 마리아)씨의 묘소가 있는 "대정성지"와 아들 "황경한의 묘소"를 방문하면서 그들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추자도에는 공소가 있다. 추자공소는 상추자도에 있고, 황경한의 묘는 하추자도에 있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버리는 일이다. 조직에 어울려 사는 것이나, 세상에 비벼대고 사는 일이나, 가족과 사는 일이나, 사는 모든 일은 자신을 버리므로서 지켜내는 일일 수 있다. 그 중심을 하느님의 말씀에 두고, 그것을 지켜내는 사람들을 카톨릭 신자라 한다면 결국 자신을 버리는 요구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데 그 버리는 목적이나 방법을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것을 선택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지키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것을 버리려는 노력이 자신의 완성을 높이는 일이라면, 그를 위한 자신과의 투쟁은 결국 순교와 일맥상통하는 일이고, 그런 생활 상의 순교를 백색순교, 청색순교 등으로 구분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이렇게 명석한 사람들에게 천주교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들은 사대부가 선비정신을 잃고 건강하지 못한 사회 속에서 또는 실학사상을 품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조선 사회의 계급 사회의 모순에 절망하면서 가톨릭 사상이 매우 큰 신선함으로 다가오고, 새로운 삶의 비젼으로 인식되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확 바꾸는 대혁신적인 일이었고, 이는 기득권 사회에서 인정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한편 이해가 가는 일이다.

 

다만 한국 천주교가 이런 박해에 기반을 둔 탄탄한 신앙이라는 것과, 그들의 신앙에 대한 신념은 오늘을 사는 후손들에게 정말 당당하게 자신을 잘 지켜가면서 살 것을 요구받는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