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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소 본문
새로 가입한 섹소폰 렛슨 클래스에는 7명 정도가 참여한다. 렛슨을 담당하는 A교수는 시내에서 유명한 강사이고 마침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다. 3년전 세종으로 이사 온 이후 줄곧 마땅한 렛슨 기회를 기다리던 중이라 B교장의 추천은 내심 반가웠다. B교장에 의하면 이 클래스는 수년 전에 대학에서 한 학기를 수강한 사람들이 오래 유지해 온 모임이라 한다. 강의도 수준이 있고 또 좋은 분 들라는 말에 새로운 교류도 기대되었다.
세종으로 이사 온 이후 마땅한 연습실을 찾지 못해 안타까웠다. 문득 안방에 있는 드레스룸이 생각났다. 양쪽에 걸린 옷들이 섹소폰 연습실의 흡음 판넬 기능과 흡사할 것 같고 또 요즘 신축 아파트의 건축 기준이 높아졌다고 하지 않는가. 하긴 낮에는 아파트에서 피아노 연습도 하지. 나는 내 위주로 입장을 정리한 후 조심스레 연습을 재개해 보았다. 다행스럽게 지난 1년 동안 나의 드레스 룸 섹소폰 연습실은 아직 민원이 없다. 결국 나는 집안에서 아무 때나 섹소폰을 즐길 수 있는 멋진 연주 생활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아슬아슬하고 다행스럽고 이웃과 가족에게 고맙다.
섹소폰을 곁에 두고 원하는 아무 때나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나는 어느 날에는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불고, 어느 날엔 식사를 하다가도 아내의 걱정을 들어가면서 연습실로 달려간다. 문득문득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섹소폰 연주에 대한 충동을 즐긴다. 텔레비젼에서 들리는 노래가 귀에 들어오면 곧바로 드레스룸으로 달려가 반주기를 켜고 연주해 보곤 한다.
일전에는 요즘 트롯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TV조선에서 조항조의 <고맙소>를 들었다. 처음 듣는 노래인데도 멜로디가 단순하고 가사가 너무 공감이 가서 곧바로 반주기를 켜고 몇 번 연주해 봤는데 그런대로 마음에 들어 곧바로 휴대폰에 녹음을 해서 지인들에게 보낸 적이 있다.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을 잘 모르나 보다/ 진심을 다해도/ 나에게 상처를 주네/ 이 나이 먹도록/ 사람을 잘 모르나 보다/ 사람은 보여도 마음은 보이지 않아”
와! 정말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세상도 사람도 잘 모른다. 부끄럽지만 아직도 마음의 상처를 받곤 한다. 퇴직 이후에야 비로소 나는 그동안 안전한 보호망 울타리에서 살았다는 것을 수시로 느끼곤 한다. 원래 나는 직장 생활 중에도 사람들과 잘 지내는 일에 어려움을 겪곤 했다.
“이 나이 되어서/ 그래도/ 당신을 만나서/ 고맙소 고맙소/ 늘 사랑하오./ 술 취한 그날 밤/ 손등에 눈물 떨굴 때/ 내 손잡아 주며 괜찮아 울어준 사람…“
또한 이 나이에 아내는 너무너무 미안하고 부끄럽고 고마운 사람이 아닌가. 어쩌면 이렇게 조항조는 나이 든 남성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지. 정말 고맙다. 한편 이런 위로를 아내에게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2절 가사를 아내 버전으로 짓지 않은 작사가가 원망스럽다. 부족하지만 평생을 곁에 있어온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다면 얼마나 위안이 될까보냐.
섹소폰에 대한 기억은 아련하다. 40대 초반이었다. 우연히 섹소폰을 만났는데 운지법이 레코더와 비슷해서 이내 쉬운 동요를 불 수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시간이 되는 대로 연습실 한 켠에서 혼자 연습을 했다. 한 음을 길게 부는 롱톤 연습이나 이어진 음계를 빠르게 연주하는 스케일 연습을 하다가 지루하면 곧바로 쉬운 노래를 불었다. 호흡이 안정되지 못하고 앙부쉐도 정확하지 못하니 입술이 아프고 한 악절을 부르기에도 힘이 들고 숨이 가빴지만, 내가 악기를 이용해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한다는 쾌감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었다. 더구나 섹소폰 소리는 그 자체로도 얼마나 매력적인지.
당시 나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컴퓨터 환경에 맞추느라 학교 수업을 오전으로 모은 후, 오후에는 교직원 연수를 운영하거나, 우리 시의 학교컴퓨터연구회를 창립해 회장이 되기도 하는 등 안팎으로 무척 분주하던 중이었다. 마침 승진을 앞에 둔 상태여서 내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다. 자연히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나 독서 등으로 시야를 넓히는 일은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가정에서도 위안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내가 만난 섹소폰은 주말에 산에 다니는 일 이상으로 내게 새로운 세계를 안겨 주었다. 그동안 내가 알았던 세상과 너무 다른, 내 가슴속의 응어리와 감성들을 새로운 수단인 섹소폰으로 토해낸다는 것은 신비롭고 위안이 되었다.
그것은 젊은 시절 야간 대학을 다닐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내게 대학은 무엇을 이루겠다는 구체적인 비젼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도무지 공감할 수 없도록 너무 답답하게만 느껴지던 학교 분위기, 끝이 안보이는 내일에 대한 절망감, 모순 투성이로만 보이던 직장을 벗어나 넓은 캠퍼스에 들어와 강의를 듣거나, 친구들과 길가 포장마차에서 호떡과 오뎅 또는 막걸리를 먹노라면 가난한 가슴이 뻥 뚫렸다. 대학은 엄마 품 같은 위안이었다. 섹소폰을 연주하며 느끼는 희열도 그런 느낌과 비슷했다고나 할까?
새로 시작한 렛슨 멤버들과 실력 차이가 큰 것이 스트레스이다. 오랫동안의 연습량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냥 즐기라 하지만 막상 렛슨이 시작되면 같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걱정이면서도 연습 시간을 잘 만들지 못한다.
나는 오늘도 금남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내가 연주 중 녹음한 <고맙소>를 듣는다. 내가 듣기로는 조항조의 노래 소리보다 훨씬 부드럽고 공감이 더 많이 간다. 새로운 클래스를 통해 내 실력이 좋아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그러면 나는 길거리 버스킹도 하고, 지금보다 훨씬 당당하게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부족하나마 혼자서 즐기는 연주도 역시 무시할 수 없이 행복하다. 섹소폰을 즐기는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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