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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그린 그림

낙화(조지훈)

haagam 2011. 2. 25. 16:28


낙 화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뒤에 머언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이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안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조 지 훈 )

*

주렴이란 구슬 등으로 꿰어만든 발이고, 귀촉도는 물론 소쩍새이다.

꽃이 진다고바람을 탓하지는 말자는 말은 매우 의젓한 마음가짐이다. 이 세상에 잘못된 일을 내 탓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만은 꽃이 지는 것이 바람탓이라 하지 말자는 말은 얼마나 의젓한 마음인가. 꽃이 지는 마음을 내 안으로 담아 안으련다.

구슬을 꿰어 만든 발사이로 별들이 하나 둘 지고,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리는 이 밤에 문득 머언 산이 가깝게 느껴지는듯 하고, 문득 시인의 마음인듯도 하다.

2연 3행의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에서 우련의 어원은 '우련하다'로 우련하게 붉다의 줄인 말이다. 우련하다는 빛깔이 엷고 희미한 상태를 뜻하는 말로, '하얀 미닫이가 약간 불그스레하다'이다.

꽃도 지려하는 이 밤에 촛불을 끄려 하는데, 꽃이 지는 그림자로 미닫이가 희미하게나마 꽃색깔을 받아 붉다.

참 섬세한 표현이고, 깊은 밤에 꽃이 지는 창 너머를 생각해보며, 하얀 미다지에 낙화로 우련 붉다 말하는 시인의 함축적인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3행 2연의 '저어하다'는 '서어하다'의 다른 표현으로 '서먹서먹해 하다.' 또는 '두려워하다'의 의미이다.

그러나 '묻혀 사는 이의 고운 마음' 또한 이 시의 백미같은 싯구이다.

나대는 사람이 어찌 고운 마음을 갖을 수 있겠는가?

그 마음이 어지럽혀질까 걱정되나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다.

이 종귀는 참 힘이 있는 문자이다. 꽃이 지는 아침에 나도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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