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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그린 그림

서시(이성복)

haagam 2015. 10. 30. 10:17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없습니다.

사방에서 새 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 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을 춥니다.

 

서시(이성복)

*

문득 이런 가을날에 느낌이 더 와 닿은다.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먹는데 늦고 헐한 저녁이 온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가 미끄럽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맞은편 골목에서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없다.  문득 당신이 나를 알아볼 때까지...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가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을 춘다. 정처없다. 정처없다. 당신이 나늘 알아볼 때까지.

 

 

*

이성복

1952.6.4. 경북 상주

서울대학교 대학원 불어불문학 박사

1977년 문학과지성 '정든유곽에서' 등단

2007년 제53회 현대문학상

계명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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