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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나눔

설날 아침

haagam 2023. 1. 22. 12:50

세종성요한성당의 설날 미사 모습_미사를 올린 조상의 위표를 적고 분향을 한 후 미사를 올림

설명절을 맞아 차례로 성당에서 아침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처음으로 혼자 지내보는 설이다보니 아침을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간단히  제수를 차리고 혼자 차례를 올리는 일이 생각났다. 그럼 제수는 어떻게 하나? 정안수를 떠놓고 올리던 한국 어머님들의 정성이 생각났고, 술한잔을 부어 올리던 한국 아버지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모두 어색해 보여서 11시 미사를 향해서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를 해결하는 일, 씻는 일, 옷을 입는 일, 그리고 나는 아침에 걸어가기로 했다. 식사로는 아내가 명절을 대비해서 얻어온 연잎밥을 미리 냄비에 올려 따듯하게 덥히고, 빵과 우유와 겨란을 준비했다. 성당에 제를 올리러 간다는 생각에 잠바보다는 외투를 준비했다. 타박타박 걷다보니 어드덧 성당이었다.

일어나 아침약을 먹고 아내에게 설인사를 카톡으로 보냈다.

"설날 새아침!
올 한해는 건강만을 생각하기로!"

그리고는 아무래도 너무 부족해보여 전화를 했다. 아내가 전화를 하면 안받거나 못받거나 영 통화가 안되어서 문자를 보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았느데, 문득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아침 식사는 어떻게 하나요?
속이 너무 메스꺼워서 말을 못하겠어요."

아내의 말은 항상 짧고, 끊는다는 말이 없이 이내 끝을 맺는다.

코로나 증상이 악화되어 아내는 지금 입원 중이다. 속이 메스꺼운 것은 너무 독한 약을 많이 쓴 탓이 아닐지. 식사량도 부족한 사람이 말이다. 주변에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보는데 무사히 넘어가기를 기도할 뿐이다.

공자는 논어 태백편에서  "흥어시, 입어례, 성어락."라 적었다.
시를 통해 자신의 기운을 돋운다는 말이다. 아니 시를 통해 흥을 키우다니. 우리가 항상 평안할 수 없지 않은가. 스스로 멜랑꼬리해지기도 하고, 아내나 가족 이웃들로 인해 우울해 지기도 하고, 금전이나 건강이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안에 빠지거나, 이내 밖으로 나와 길을 걷거나, 산을 오르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악기를 불거나, 논밭에 나가 작물을 돌보는 등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공자에게 이런 방법이 시라니. "
공자는 무슨 시를 읽었을까? 공자에게 흥하게 하던 시는 무엇이었을까? 시를 읽으려면 일정한 공간이 필요할텐데 그런 공간이 공자에게는 어떻게 마련되었을까?

 

논어의 이 구절에서의 흥어시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시를 학문으로 해석해서 자신을 흥하도록 일궈준 것이 학문이라는 설도 있고, 시가 본질적으로 갖는 휴머니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나는 뭐 그런 사람들과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생각은 없지만, 아주 원초적으로 자신을 따듯하게 워밍업하는 수단으로 시가 있다는 말로도 아주 위안이 된다. 원래 논어나 성경 등은 다중의미를 갖는 것이 보통이고, 또한 자기에게 위안이 된다면 원뜻을 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마침 오늘은 우리 성당은 주임신부님이 갑자기 3년만에 예기치못한 이임발령이 나고, 후임 신부님이 오셔서 첫 미사를 올린 날이다. 신부님은 40대 중반정도이신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큰 성당은 나이가 지긋하신 겸손하신 신부님이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신부님은 나긋나긋 조심스러워하셨다. 소개말씀에 의하면 군종신부로 시작하셨다한다. 총회장은 우리 본당의 현황을 설명하고 코로나와 추위가 가시지 않아 아직 인내와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말했다. 우리 성당 주소가 새롬동 76-1이라고 설명했다.

신부님은 말씀 중에
"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드릴까 조심스럽다."
"여러분들 마음 상하지 않도록 하겠다."
등의 조심스러운 말씀을 여러번 하셨다.

사람이 살면서 착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이웃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는 말을 많이 들은 생각이 났다. 피해를 준다는 것이 무엇인가? 나쁜 짓을 하는 것. 무엇이 나쁜 일인가? 굳이 도둑질이나 강도가 아니라도, 우리 생활에서 가족과 이웃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쉽게 할 수 있는 나쁜 일이 아닌가? 공자는 흥어시, 입어례라 했다. 예의를 갖춰 자신을 세운다는 말이니, 이웃을 배려하여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는 일을 세웠다는 말이다. 평소 남에게 조심스럽지 못한  내게 설날 아침에 주는 훌륭한 가르침이다. 아내와 자식들, 형제들에게 마음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사는 일을 자주 떠올리면서 지낸다면 내 생활에 어려움이 좀 줄어들지 모른다.

아침에 애들, 큰누님 전화를 받았다. 그래 전화가 생겨 그나마 참 다행이다.

이제 나는 다시 걸어 집으로 가고, 차를 몰아 성묘를 하러 갈 참이다.
설날 아침이다.

주일이자 설날 교중미사에는 자리가 부족해서 문 밖에 보조의자를 놓을만큼 많은 신자들이 모였다.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 영전을 축하하는 난을 정문에 탁자를 놓고 올려놓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화환이 오면 우선 이름표를 삭제한 후 주변 사무실이나 불우이웃에게 화분을 나누는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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