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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나눔

울릉도 독도 탐방

haagam 2015. 10. 23. 16:34

 

 

 

포항에서 울릉도는 3:30분 소요된다. 독도박물관, 독도전망대, 독도해양과학기지, 안용복기념관, 내수전둘레길 생태체험(개척민 삶의 길), 관음도, 수중전망대, 나리분지 등을 만났다.

 

울릉도는 3무 5다의 특성을 가진 신비의 섬으로 설명된다.  도둑, 공해, 뱀이 없는 삼무三無와 향나무, 바람, 미인, 물, 돌이 많은 오다五多의 섬이다. 동해 유일의 도서군으로 행정지역은 경상북도에 속한다. 가장 가까운 내륙은 경북 울진군 죽변면으로 130km 떨어져 있다.

 

옛날에는 무릉, 우릉 또는 우산국으로 불렀다. 우리나라 문헌에는 신라 지증 마립간 13년(512년)에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한 내용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1696년과 1696년에 안용복이 일본과 담판을 지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인정받았다. 1883년(고종20년)에 개척민 16호가 입도했다.

 

울릉도에 물이 많은 것은 참 특이하고 신비로운 일이다. 울릉도의 鬱은 울창할 울인데, 산길을 걷다보면 물이 얼마나 풍부한지 산이 모두 젖어 있는 느낌이고, 숲이 울창한 것도 물이 많은 덕이라 생각된다.

 

오징어내장탕은 오징어가 많이 잡히므로 요리가 가능할 것이다. 맛이 담백하고 술국으로 제격이었다.

울릉 약소는 울릉도의 소고기를 의미한다. 육질이 연하고 마블링이 절묘하다.

따개비칼국수는 말 그대로 바닷가의 작은 조개인 따개비를 채취해서 이를 재료로 조리한 칼국수로 국물이 매우 시원 담백하다.   다른 음식은 있다는 것만 알고 왔다.

 

울릉도 특산물에 대한 생각이다.

울릉도 더덕은 이제 재배를 많이 한다. 산지로 나리분지가 대표적이라 한다. 길가에서 즉석 더덕즙을 판다. 상큼했다. 더덕을 사왔는데 싱싱하고 몸집이 크지만 향이 좋은지는 의문이었다.

심층수 생수와 고로쇠 수액이 유명하다는 설명을 듣고 생수공장은 지나다 보았다.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과이다. 호박엿은 호박액의 함유 정도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요즘은 육지에서 생산된 호박엿이 역입되기도 한다고 한다.

명이나물이 유명하다 해서 조금씩 사와봤다.  아래에 부지깽이나물이다. 울릉도 호박막걸리도 유명하고 맛있다.

 

독도는 경북 울릉군 독도리 1~96번지(동경 131도52' 북위 37도14')에 위치해 있다. 울릉도에서 87.4km, 일본 오키섬에서 157.5km 떨어져 있다. 동해에 우뚝 솟은 독도는 서기 512년 신라가우산국을 복속한 이래로 우리 영토이다.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독도에는 60종 내외의 식물과 60여종의 조류, 129종의 곤충 등 다양한 해양생물이 서식하는 신비의 섬이다. 동도 서도를 비롯해 89개의 보속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도는 남쪽 비탈을 제외하고는 60도가 넘는 벼랑으로 그 아찔한 기세가 절개를 자아낸다. 특히 한반도 바위는 독도의 국적을 드러내는 자연의 상징물로 인기가 높다. 서도는 동도보다 조금 큰 섬으로 주민 숙소가 있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봉우리도 경사가 가파르다. 독도 관광은 파도 사정에 따라 선착장에 접안하지 못하고 해상에서 마주하는 경우도 있다. 접안이 이루어지면 약 30~40분정도 머물 수 있다. 현재 일반 주민을 비롯한 경비대원, 등대원, 울릉군 공무원 등 40여명이 상주하고 있다.

 

 

 

 

 

 

 

 

 

 

**안용복 기념관

   17세기의 조선은 조세 납부와 자국민 보호를 위해 울릉도와 독도에 살던 피역인을 본국으로 이주시킴과 동시에 비어있는 섬에 왜구가 침입 정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를 수색 토벌하는 수토정책을 펴고 있었다. 하지만 연속된 자연재해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조선의 일부 동남해안 어민들은 국법을 어기고 비밀리에 울릉도와 독도를 넘나들며 조업을 했고, 일본 어부들도 수토정책을 악용하여 이 두섬의 산림자원과 수산자원을 수탈하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조선인 어부와 일본인 어부가 조업권을 두고 갈등을 빚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두고 조선과 일본간의 '울릉도 쟁계'가 발생하였다.

 

   안용복은 조선 숙종 때 경상도 동래 사람으로 다양한 사료에 나타나지만 기록이 각기 상이하여 그의 출생 및 사망 연대와 신분 등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당시 그의 행적에 대한 내용은 다양하게 사료에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안영복의 대표적인 행적은 두 차례에 걸친 도일이다. 첫번째 도일은 1963년 오오야(大谷) 가문 어부에 의해 강제 피람된 것이며, 두 번째 도일은 울룽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확실하게 못박기 위한 1696년의 도일이었다. 이 두 번의 도일 결과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인정했으며, 조선은 두  섬의 영유권과 조업권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이처럼 민간외교가로서 울릉도와 독도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한 안용복의 공적은 지금도 귀감이 되고 있다.

 

  1693년 을릉도 인근에서 고기를 잡던 안용복 일행은 불법 조업 중이던 일본 오오야 가문의 어부들과 조업권을 두고 대립하다 결국 그들에게 피랍되너 일본으로 끌려갔다. 안용복은 일본에서 자신의 납치와 구금에 대해 항의함과 동시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 주장하였다.

  국가의 허락없이 월경했다는 죄목으로 2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안용복은 1696년 울산 출신 어부들, 잔라도 승려 뇌헌 등 11명을 태우고 울릉도로 행했다. 거기서 안용복은 어로활동을 하던 일본인들을 몰아내고 그들을 뒤쫓아 미리 준비한 관복을 입고 배에 '조울양도감세장朝鬱兩島監稅將'이란 깃발을 달았으며, 조선팔도지도를 지참하여 울릉도가 조선땅임을 주장했다.

 

  안용폭의 피랍 이후 일본의 에도막부는 죽도도해금지령을 내리고 조선정부에 통보했다. 당시 울릉도를 죽도, 독도를 송도라 했으므로 이 금지령은 울릉도 도해만을 금지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울릉도를 드나들던 오오야 가문이 소장한 자료에는 죽도와 송도라는 기록이 있는바 죽도도해금지령에는 독도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용복 기념관은 경북 울릉군 북면 석포길 500(054-791-8873)에 있으며 개관은 0900-1800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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