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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편지(황동규)

haagam 2011. 5. 27. 09:28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황순원>


황동규는 소나기의 저자 황순원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

그는 세련된 감수성과 지성을 바탕으로 견고한 시 세계로 많은 한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50년대 중반 등단 당시 한국의 시는 김소월의 뒤를 잇는 서정시와 엘리어트 등 서구의 영향을 받은 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마, 시인은 독자적으로 자신만의 시세계를 일구었다.

2011.5.20. 1400, 대한민국예술원 주최로 대전시 대덕구문예회관 2층에서는 황동규 시인 초청 특별강연회가 있었다.

황시인은 이날 즐거운 편지 등 자신의 시 세계와 문학의 본질에 대해 깊있는 철학과 가치관을 보여주었다.

황시인은 이날 특강에서 문학이란 삶의 진실 때문에 쓰고 싶지 않아도 쓰게되는 것이라며 문학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다. 또한 자신의 작품을 직접 낭송한 후 작품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앴는데, 즐거운 편지에 대한 이야기로, 고3때 짝사랑하던 여대생에게 바친 시라 고백했다.

당시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시에 담고 싶어 만해 한용운과 김소월의 시를 비슷하게 흉내내려 했으며, 처음에는 나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애절한 연시를 지으려 하였으나, 써놓고 보니 내 사랑도 어디쯤에서 반드시 그칠 것으로 믿는다는 싯구가 들어가는 바람에 그 여대상은 이 시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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