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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군에 부침

haagam 2011. 6. 17. 14:48

제사 상에 붙이는 지방紙榜의 '학생부군 學生府君'이란 말이 좋다.

깨우침을 위해 평생을 노력하신 분이란 말로 생각된다.

지나고 보면 허망하고 부질없는 일들에 연연해 하며 가슴 조이는 구차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원래 본 마음은 선해서 지나고 나면 결국 후회하고 부끄러워하는 구도적인 자세로 살다 가신 분이라니!

우리 이웃같이 소박하고 정감이 가지만, 한편 얼마나 엄숙한 말인가!

우리 같은 범부凡夫들에게 삶의 본질적 보람을 느끼며 살게하는 핵심 키워드는 과연 무엇일까?

젊은 시절 8년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33세에 수도회에 입회하여 늦깍이 수사가 된 후 22년간의 수도자 생활을 소개한 성 베네딕도회 이수철 수도신부를 소개하는 글을 읽었다.

수도회 입회 시의 서원誓願은 1)정주定住(수도원 공동체 안에서 평생을 생활함), 2)수도승다운 생활, 3)순명順命(하느님 말씀과 웃어른, 그리고 이웃 형제들에게 순종하기)이다.

수도회의 가훈家訓은 '기도하고 일하라.'이다.

새벽 4시 30분에 독서와 묵상으로 시작되는 하루 일과는 말 그대로 기도와 노동의 반복이다.

아침 기도와 묵상, 한낮에는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노동과 일을 시작하기 전과 마치고 난 후의기도, 저녁 묵상과 식사 그리고 기도 등이다.

이들의 노동이란 농사일이다.

1,200여 그루 배밭 농사를 통한 육체 노동은 자신의 삶의 한계를 깨달아 자신을 알게 하는 "겸손"의 수련이자, 세상의 이런저런 소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와지는 '이탈detachment'의 수련이다.

쌓고 덧붙여서 이루어내는행복이 아니라, 삶의 군더더기를 털어버리고 존재 자체의 샘으로부터 나오는 진정한 행복이다.

65년동안 수사로 살다 95세에 선종한 노老 수사의 전 재산이 낡은 트랜지스터 라디오 하나 뿐일 정도의 철저한 청빈淸貧은 수도회 속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어, 장수長壽가 짐이 될 정도로 여유 시간이자신을압박하는 시대에, 삶을 극도로 단순화시키고 겸손과 이탈의 수련 방법으로 노동과 청빈을 택한 수도승들의 얘기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나무에 잎이 차면 하늘과 별을 가리게 되고, 욕망과 환상의 나무잎은 영혼의 시야를 가리게 된다.

잎을 떨구어 낸 겨울 나무만이 푸른 하늘과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

*(110617, 학바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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