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자전거

산경(도종환) 본문

글로 그린 그림

산경(도종환)

haagam 2011. 1. 3. 16:10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룰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는 흙이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도종환 <산경> 전문


'글로 그린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자신의 노래 32 (월트 휘트먼)  (0) 2011.01.23
산가(도종환)  (1) 2011.01.05
결혼에 대하여(정호승)  (0) 2010.10.06
편지(김남조)  (0) 2010.08.17
이런 노인이 되게 하소서  (0) 2010.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