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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부엌(사아시 게이조) 본문
서명 : 아버지의 부엌
저자 : 사아시 게이조(엄은옥 역)
출판 : 지향(2008.5.31. 320쪽)
일생을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하고 60부터 90까지의 삶을 Third Age라 부른다고 한다. 특히 그중 첫 15년은 사회 봉사의 여력이 있는 시기이지만, 나머지 15년은 건강과 고독과 경제난을 이겨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 한다.
쇼펜하우어는 사람이 50부터 70사이에 갈등이 많아지는 것은 젊음과 늙음 사이에서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며 사회와 균형을 맞추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라 했다.
이 책은 황혼에 아내를 잃은 남편의 홀로서기 분투기이다. 주인공 부엌 속의 아버지는 83세가 되어 폐암으로 아내를 잃는다. 장성한 5명의 자식이 모두 아버지를 모실 형편이 되지 않자 여든이 넘은 아버지는 홀로서기를 선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흔히 부부 중 남자가 혼자 남을 때 어려움이 더하다는 말을 하지만, 자녀들이 알아서 뒷바라지를 잘 해주어도 어려울 일을 혼자 하는 것은 생활의 뒤죽박죽을 의미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효자보다는 악처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자식 중 유일하게 독신인 50넘은 3녀이자 저자인 사하시 게이죠가 아버지의 홀로서기 감독관이 된다. 혼자 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 있다보면 우선 생활의 규칙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아버지가 혼자 살아도 활기차고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빈틈없고 혹독한 일과표를 만든다.
아침에는 6시에 일어나고, 옷 갈아입고,잠옷 담요 이불정리 침대커버 씌우기 둥의 침대정리, 그리고 용변보기, 이닦고 세수하기, 현관신문 집어와 거실에 두기, 밥짓고 된장국 끓이고 야채절이기 조림반찬과 김 준비하기 등이다.
점심에는 텔레비전 뉴스 보며 점심준비하기, 우동 빵, 식후 설거지는 즉시하기,약을 먹고 산책하기, 낮잠자기 등 저녁에 잠은 몇 시에 자며, 취침 전에 부엌과목욕탕 가스 잠그기, 온수 보일러 끄기, 수도꼭지 잠그고 확인하기, 덧문 창문 잠그고 확인하기 등 53-55쪽의 내용에는 빈틈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가 처음부터 이런 일과표를 지키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이런 딸이 군대에서 만난 마귀하사관보다 더 지독하다, 어린애 취급해서 싫다 하고 불편하면서도,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또한 자신을 걱정하는 자식을 위해 일과표를 지키며 홀로서기에 도전한다. 그 과정이 상식적이고 흔한 일이면서도 우리에게 공감을 주는 것은 우리도 언젠가는 그런 삶의 궤적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스스로 해야 한다. 이것은 잘 하는데 저것은 못하고 등 한가지라도 못하는 것에 생활이 비틀어진다. 83세 노인에게는 더욱 벅찬 일이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일회용 간이식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그런 생활이 자신의 외톨박이를 더욱 심하게 할 뿐이라는 딸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나중에는 직접 장을 보고 반찬을 만들며 일상의 즐거움을 느낀다. 집안 정리와 세탁기 돌리기도 직접 한다.
그렇지만 노인의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외로움을 위해 스프가 식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 이웃을 만든다. 직접 장을 보고 반찬을 만들며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고, 이웃과 친해지기 위해애써 가꾼 분재 동네 바자회에 내놓기도 하고, 다양한 모임을 만들고, 동사무소와 우체국을 일부러 자주 들리고 반상회에도 적극 참여한다. 사회에서 함께라고 느끼는 감정이 결국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책의 백미는 이런 아버지가 쓴 일이이다.
드디어 외톨이생활이 시작되었다. 얼마만큼 쓸쓸할이지 모르겠지만 될 수 있든대로 많이 생각하고 노력하고 참아가자
날은 저물어 쓸쓸한데 양파를 썰어 저녁 반찬을 만들자니 눈물이 넘쳐 흐른다.
셋째와 함께 중추절에 달구경하려고 갈대와 토란 그리고 찹쌀가루를 사 두었다. 그러나 딸은 바쁘다고 동동 구르며 옷 정리 등 가을 준비만 해놓고 돌아갔다. 마누라가 있었으면 둘이 경단을 만들어 공양을 드리고, 고구마를 조리거나 잡곡밥을 해 줬을텐떼, 눈물이 났다.
요즘의 감정의 변화가 심하다. 혼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구름이여, 내 있는 곳만은 달빛을 가리어 주오.
연휴를 딸과 보내면서 딸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나서 쓴 일기이다.
딸도 나처럼고독할 때가 많다고 해서 놀랐다. 열심히 일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딸고 일이 끝나면 한낱 허약한 인간이란 고독에 사로잡힌다는 것을 늙은 아버지는 생각도 못해 보았다. 나이탓이야, 불행하게도 마누라가 먼저 죽은 탓이야, 아들이 돌봐주지 않기 때문이야.. 하면서 외로워했는데 이제 무언가 말하기 어려운 반성이 마음 속에서 우러 나왔다.
결국 아버지는 함께 살자는 자식들의 권유에 "혼자서 좀 더 해 볼게!"라 말하며 스스로 남기로 한다. 늙고 볼품없고 가진 것 없는 나이가 되어도 누구나 희망만 잃지 않는다면 소박하고 행복한 일상을 느낄 수 있다. 나를 사랑하고 자신을 인정하며 스스로를 돌 보는 일을 통해 독자적인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2011, 학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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