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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대신 납득답을 찾는 것이 진짜 공부(후지하라 가즈히로 교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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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대신 납득답을 찾는 것이 진짜 공부(후지하라 가즈히로 교장)

haagam 2016. 5. 16. 10:17

 

 

(아래 글은 조선일보 2016.05.14.토. B1면을 읽고 옮긴 내용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13/2016051301684.html

 

 

신입생 360여명 중 학생 1천여명이 모인 자리에 새로 부임한 후지하라 가즈히로 교장(61)이 축사 대신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10년 두 일본 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까?" 웅성거리는 학생들에게 후지하가 가즈히로가 답했다. "이 질문에 답은 없고 여러분들이 말하면 그것이 답입니다.  이런 답을 '납득답'이라 나는 부릅니다.  정답이 아니라 납득할 만한 답을 내 놓을 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부임한 후지하라 교장은 "세상수업"이라는 특강을 열고  "햄버거 가게를 열어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이거나, "고무"라는 주제를 주고 아무 것이나 떠오르는 것을 말해보는 브레인스토밍을 시키기도 하였다.  이런 식의 교육에 학부모들의 참여할 수 있도록 "학교 지원 지역 본부"를 만들어 큰 호응을 얻게 되자 일본의 1/3에서 이런 기구가 설립되어 일본 교육개혁의 한 축이 되고 있다.

 

2003부터 5년간 와다중 교장을 지낸 후지하라는 이후 저술가 겸 대학교수로 나서 1997년 <처생술>이라는 책을 써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이어 <완벽하지 않은 스무살을 위한 진짜공부>(21세기북스), <마흔, 버려야 할 것과 붙잡아야 할 것들>(21세기북스) 같은 책을 썼다. 저서에서 그는 "꾸준히 성장하던 시대에는 정답을 맞추고 좋은 대학을 나와 안정적으로 살다가 노후까지 보장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성장을 멈춘 <성숙사회>가 되었다.  성숙사회에서는 정답이나 시험성적이 행복을 보장해 주주 읺은다. 개인만의 행복론을 찾아야만 한다."라 말한다.

 

그에게 성숙사회를 물었다.

"성숙사회는 바로 정답이 없는 사회입니다. 지금껏 학교교육은 정답만을 가르쳤습니다. 교복보다 사복이 나쁜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성장을 멈춘 사회에서는 국가와 기업이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 개인이 독자적으로 행복론을 가져야 하는 시대이다. 행복에 정답이 없는 사회가 성숙사회이다. "

 

대입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국 수능처럼 일본에는 센터시험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동안 정답이 하나뿐인 시험이었다. 2020부터 사고력과 판단룍, 효현력을 더욱 많이 요구하는형태로 변경할 예정이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의 <세상수업> 프로그램이 도움을 줄 것이다.

 

한국도 일본과 같은 성숙사회이고 중국도 10-15년 이후 성숙사회가 될 것이다. 미국은 이민자가 많은 아주 특이한 사회이고, 특히 히스패닉계가 1억명 정도된다. 그들이 하류층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구글과 같은 회사 경영진을 차지하기도 한다. 출생률도 높고 평균 연령도 낮은 편이다. 그래서 미국은 여전히 <성장사회>이다.

 

이미 성숙사회를 맞은 유럽은 종교가 개인ㅇㄹ 모아주는 역할을 했으나 일본은 그러지 못했다. 대신 SNS가 종교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미국은 숟가락에도 신이 있고 꽃에도 신이 있다고 하는 등 800만 종류의 신이 있다. 그렇게 흔한 신은 사람들을 강력히 연결해주지 못한다. 일본은 그 공간을 SNS가 대신하나 일시적인 유대감을 줄 뿐 근본적인 행복을 주지 못한다.

"시간적 여유가 주는 공포"란 정답만 외우고 취미나 여가 활동 없이 줄기차게 회사 생활만 하던 사람들이 갑작스런 은퇴를 맞아 공포와 맞닥뜨린다는 것. 회사 밖 커뮤니티를 찾고, 스포츠활동에 참여하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라 주장한다.

 

그는 리쿠르트에서 47세가지 열심히 일했고, 그후 교육개혁이라는 주제로 15뇬간 매진했다. 요즘은 네팔이나 라오스 같은 나라에 학교를 세워주는 일을 할까 생각한다. 계획대로라면 95세까지는 활동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성숙된 사회는 다양함을 인정하는 사회라는 말을 애둘러 어렵게 표현하고, 또 학교에서의 여러 경험을 너무 내둘러 자기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학교에 미친 반향을 볼 때 그의 통찰력이나 추진력 등은 남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자신을 성찰하고 자꾸 되물어 보면서 스스로 살 길을 찾아보는 인문학의 시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끄는 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