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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위皇位와 바꾼 사랑, 양귀비의 장한가 長恨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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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위皇位와 바꾼 사랑, 양귀비의 장한가 長恨歌

haagam 2010. 10. 1. 19:52

■ 양귀비를 만남

어느 시대나, 누구에게나 사랑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의 과제이다. 어느 이야기에나 사랑은 그 매개가 되고 있고, 역사를 변화시키는 촉매가 된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나라를 위태롭게 할 만큼의 아름다움을 의미하지만 그 어원은 역시 양귀비이다.

지난 여름 우연히 중국 시안(西安)을 들러 당나라 6대 황제,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장한가 長恨歌" 공연을 보게 되었다.

나는 양귀비가 미인의 상징이라는 말을 들었을 뿐, 그 이상 아무런 상식이 없는 상태였다.우리는 차안에서 가이드로부터 장한가에 얽힌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공연을 관람하였는데 그 내용은 매우 소설같이 놀라운 내용이었다. 당 현종이 사랑한 양귀비는 자신의 며느리였다는 것과, 그때 당현종은 60대였고, 양귀비는 20대 젊은 나이였다는 것이다.

국경이 없는 사랑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이 엄청난 대륙의 황제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지를 포기하게 한 당현종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사랑 본연에 대한 질문을 갖게 하였다.

돌아와 우리의 영원한 참고서 인터넷을 뒤적이면서 자료를 모으고 부족하나마 비로서그들의 슬픈 사랑의 서사시 장한가를 정리해 본다.인터넷으로 이런 내용을 알수 있다는 것은참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웹에게재하기에는 그 근거가 다소 미흡한 부분이있음을 송구하게 생각한다. 많은 부분은 "네이버캐스트 역사인물" 사이트에서공부한 것임을 밝힌다.

사랑이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사랑은 살아가는 과정의 하나의 표현 방법이나 수단일 수 있을 뿐이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모두에 대한 상생 相生의 수단이 되어야 하고, 모두에게 좋은 모습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당 현종은 그런 의미에서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아쉬움이 있어 세상사람들은 이 사랑을 현종의 입장에서 접근하기보다 양귀비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이고, 사랑이 여자에게 더욱 값진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은 조물주의 뜻이라고나 해야 할까보다.

그러나 양귀비가 1300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세간의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은 물론 중국에서 이를 상품화한 탓도 있지만, 그 사랑이 너무 파격적이고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은 영원한 숙제가 되기 때문인 것은 아닐런지...

■ 절세 미인 양옥환

양귀비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함께 중국의 4대 미인 중의 한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고 중독시키느 아편꽃에 양귀비란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그녀의 미모는 어지간히도 "치명적"이었던 것 같다.본명이 양옥환인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고향 산시성(山西省)을 떠나 쓰촨성(四川省)에 있는 숙부 양립의 집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노래와 춤에 능하고 미모가 출중해 이미 17세에 당 현종의 18번째 아들인 수왕 이모의 비妃가 되었다. 수왕 미모는 당 현종과 무혜비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로 황제 계승권으로부터는 멀은 수 많은 왕자 중 한명에 불과했다.

수왕과 양옥환이 6년간 결혼생활을 한 것을 보면 양옥환이 당 현종의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천수를 다하며 해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인 박명이라, 6년간 수왕 이모의 아내로 살던 23세에 양옥환은 당 현종 처소의 환관인 고력사의 은밀한 방문을 받는 것으로 비극의 역사는 시작된다.

■ 현종의 여인


당시 현종은 그가 총애했던 무혜비가 죽고 외로와하던 중으로, 정부에서는 그를 위로하기 위해 중국 전역의 미녀들을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중이었다.

환관 고력사는 드디어 양옥환을 현종의 술자리로 불러내고, 양옥환은 그 자리에서 음악 애호가 당 현종이 직접 연주하는 가락에 맞춰 자신의 장기인 아름다운 춤을 선보였다. 춤이 미쳐 끝나기도 전에 남녀간의 이루어질 수 있는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당시 60을 바라보던현종의 마음에 불길이 당겨진 것이다.

현종은 양옥환이 아들의 아내, 즉며느리라는 사실도 잊은 채 그녀를 품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현종의 구애求愛에 망설이는 며느리 양옥환은 환관 고력사가 특별히 파견한 궁녀들의 설득과 물량공세에 무너지고 마침내 양옥환은 수왕을 버리고 시아버지현종의 여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음모와 파행

현종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우선 양옥환을 화산으로 보내 도교의 도사로 입문시킨다. 당시 도사가 되는 일은속세의 일들이 다 지워지는 과정으로 여겨지는 일로 이때양옥환의 도호는 "태진"이었다.그 사이 미안해진 아들 수왕에게는 위씨 성을 가진 여인과 재혼하도록 주선하였다.

모든 일이 매끄럽게 처리되고 현종은 꿈에 그리던 여인을 맞는다.우선 도사를 모셔와 가르침을 받는다는 핑계로 태진궁을 짓고 양옥환을 살게 하였다. 태진궁은 그들의 아방궁이 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후 양옥환은 27세에 귀비 책봉을 받아 양귀비가 되었다. 비록 비의 신분이었지만 현종이 황후의 자리를 비워둔 채 지냈으므로 실제 황후와 다름없는 권력을 휘둘렀다.

당현종은 젊어서 정치에 소질이 있는 황제였다 한다.치세 전반기는 현종의 연화를 따 <개원開元의 治>라는 칭송을 받으며 중국 역사 중 몇 안되는 태평성세를 구가하였다.그러나 그는 양귀비를 맞으면서 사랑에 눈이 멀어 정치는 관심 밖의 일이 되었고, 그틈을 타고양귀비를 낀 환관과 탐관오리가 득세하면서 궁궐은 부정부패가 만연해 지고 백성들의 삶은 급속하게 몰락해 민심은 흉흉해졌다.

현종은 오로지 양귀비뿐이었다.

그를 위해 누대로 유명한 온천, 화청지에 궁을 짓고 오로지 양귀비와 사랑하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현종을 양귀비를 자신의 말을 이해하는 꽃 해어화解語花라 칭하고, 그가 즐긴다는 이유로 2천리 밖에 열리는 과일 여주를 매일 공수하도록 하였다.

원하는 사치를 다 누리게 하였음은 물론 권력에도 손을 대어, 그의 6촌오빠 양소는 건달출신 부도덕한 간신배였지만 현종에게 국충國忠이란 이름까지 하사받게 하였다. 그는 현종 말기 대표적 부패 권력으로 "안사의 난"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한 인물이다.

양귀비는 현종의 사랑을 잡기 위해 매번 새로운 화장법을 개발하고 목욕을 즐겨 늘 희고 매끄러운 피부를 유지했다 한다.

그는 날씬하고 가녀린 미녀가 아니었다."자질풍염資質豊艶하다." 역사서의 기록이다. 풍만하고 농염하다는 의미이다.

< 화청지 양귀비 조각상과 화청지 내의 양귀비 전용 욕실 해당탕 >

■미인박명

당 현종의 몰락은 양귀비가 총애하던 두 남자 사이의 알력에서 시작되었다.

양귀비는 중국 변경 돌궐족 출신 안산록을 가까이 하였다.그는 일개 군졸에서 용맹으로 공을 세워 일약 중앙정계로 진출한 인물이었다. 20대의 양귀비는 40대의 안산록을 수양아들로 삼고 그를 가까이 하였으며, 양귀비와 안산록 사이에는 지금껏다양한 소문들이 전해진다.이는 그의 6촌오빠 양국충은 안록산이 갈등의 원인이 되자 제거하려 하고, 이를 눈치 챈 안록산은 변방에서 난을 일으켜 당나라 수도 장안가지 쳐들어왔다. 안사의 난이다.

현종은 양귀비를 데리고 서쪽으로 피난하였다.

장안 100리쯤 가 섬서성 마외파에 도착했을 때 성난 군중과 현종을 호위하던 병사들이 양귀비와 그 일족들을 처벌하기를 원하였다.현종은 사랑과 목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그는 양귀비에게 죽음을 종용한다.그의 뜻을 알아챈 환관 고력사는 양귀비가 자결아닌 자결로 생을 마무리하도록 하고, 그의 시체를 수습해 인근 조그만 산에서 장사를 지낸다. 경국傾國의 책임을 그에게 돌린 셈이다.

양귀비의 끝, 미인박명이다.(719-756.6.15, 38세)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양귀비와 함께 죽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양귀비가 죽은 후 그는 황위를 아들 숙종에게 물려주고 양귀비만 그리워하다 그의 초상화를 앞에 두고 그녀를 지키지 못한 회한과 그리움에서 6년을 살다 762년 7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685-762)

■뒷얘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양귀비의 아름다움이 너무 대단해 고력사와 군졸들이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고 일본으로 그녀를 탈출시켰다는 것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양귀비는 그후 30여년을 일본에서 더 살았다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유물과 사당, 무덤이 일본 야마구치현에 있는데, 실제 양귀비 후손이라는 족보를 들고나온 사람도 있다 한다.

■백거이의 장한가

백거이는 당나라 시인으로 유려평이流麗平易한 문체로 당대를 통해 가장 두드러진 개성을 형성하였고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장한가 비파행 등이 있다.

그는 당 현종이 죽은 지 50년이 지나 백거이 나이 35세에 왕질부와 진홍이 그를 찾아와 선유산에 놀러 갔다가 현종이 양귀비와의 로맨스가 화제에올랐다. 이때왕질부가 이 내용으로 글을 지어보라는 제의에 시인의 상상력을 발휘해 백거이는 시로, 진홍은 산문으로 그들의 신화적인 사랑이야기를 애절하게 지었다.

내게 시선을 끄는 일은그가 당현종의 실정을 탓하지 않고, 둘 사이의 사랑에 촛점을 맞추어 글을 지었다는 것과, 그 이름을 장한가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백거이에게 그 둘의 사랑은 결국 커다란 서러움, 긴 한으로 비춰진 것이다. 백거이의 장한가 싯귀는 "비익조와 연리지"와 같이 알게 모르게 우리 귀에 익숙한 구절이 많고 너무 유명해서 몇 구절을 옮겨본다.

*

칠월칠일 칠석날 장생 궁궐전에서

아무도 없는 오밤중에 둘이서 서로 만나 속삭이던 말

하늘에서는 날개를 짝지어 날아가는 비익조가 되게 해주소서

땅에서는 두 뿌리로 한 나무로 엉긴 연리지가 되자고 약속했지요.

하늘과 땅이 아무리 장구하다 하여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이 슬픈 사랑은 영원히 끊어지지 않으리라.

*

연꽃 휘장 속에서 보낸 뜨거운 봄밤

봄밤에 너무 짧아 해가 높이 솟았구나.

황제는 이날 이후 조회에도 안나오네

후궁에 미인들은 3천명이나 되었지만

3천명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네.

금으로 치장한 궁궐에서 화장을 끝내고 기다리는 밤

백옥 누각에 잔치 끝나면 피어나는 몸

*

서쪽으로 도숭 문 백여리를 나오더니

어찌하오리 여섯 군대 모두 멈추어서네

아름다운 미녀 굴러 떨어져 말 앞에서 죽으니

꽃비녀 땅에 떨어져도 줍는 이 아무도 없고

비취깃털 공작비녀 옥비녀마져도

황제는 차마 보지 못해 얼굴을 가리고

돌아보니 피눈물이 흘러 내리네

■서안 화청지 장한가 공연

중국 서안은 13대 황실의 수도가 되었던 유서깊은 역사의 도시이다. 그리고 양귀비의 화청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저녁이 되면 화청지를 중심으로 산과 그곳 연못을 이용해 스펙터클한 화청지 공연이 이루어진다.

레이져를 이용해서 분수벽에 화려한 장면을 연출하고, 와이어를 통해 이곳저곳에서 입체적으로 사람이 움직이는 생동감을 준다.

나는 안내원이 사진촬영을 못하게 하여 사진을 못찍었는데, 너무 고운 사진이 인터넷에 검색되어 양해를 구하지도 못한 채 사진을 올려본다. (올리고 보니 뉴시스 사진이라 되어 있다.)

관람석 앞 분수대에서 물줄기를 올려 수막을 만들고 레이져를 쏘아 후면에 양귀비를 비추고 있다.


공연 입장권이다.

공연료에 대한 느낌은 주관적이므로 뭐랄 것은 없지만, 공연 관람 후의 느낌은 모든 사람들에게 한동안 울림을 주는 것은 사실인듯, 인터넷 이곳저곳에는 장한가 이야기가 심심치 않다.




왕안이 지음, 유병례 옮김 은행나무 간(2009.10.04) 소설 "장한가"가 있다.

■장한가 長恨歌

詩 白居易(백거이 772-846)

漢皇重色思傾國(한황중색사경국) 한나라 황제 색을 즐겨 경국지색 찾았으나
御宇多年求不得(어우다년구부득) 오랜 세월 구했어도 얻을 수가 없었네.
楊家有女初長成(양가유녀초장성) 양씨 가문에 갓 성숙한 딸이 있어
養在深閨人未識(양재심규인미식) 깊은 규방에서 길러 사람들이 알지를 못했네.
天生麗質難自棄(천생려질난자기)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一朝選在君王側(일조선재군왕측) 하루아침에 뽑혀 황제 곁에 있게 되었네.
回眸一笑百媚生(회모일소백미생) 눈동자 돌려서 한 번 눈웃음치면 온갖 애교 피어나니
六宮粉黛無顔色(육궁분대무안색) 단장한 육궁 미녀들의 얼굴빛을 무색하게 가려버리더라.
春寒賜浴華淸池(춘한사욕화청지) 봄추위에 화청지에서 목욕함을 허락받으니
溫泉水滑洗凝脂(온천수활세응지) 온천물로 얼은 몸을 반드럽게 씻어냈네.
侍兒扶起嬌無力(시아부기교무력) 시녀들의 부축에도 교태는 연약하고
始是新承恩澤時(시시신승은택시) 이때부터 황제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더라.
雲鬢花顔金步搖(운빈화안금보요) 구름머리, 꽃 얼굴, 한들거리는 금장식
芙蓉帳暖度春宵(부용장난도춘소) 부용 휘장 안에 따뜻한 봄밤은 깊어 갔고
春宵苦短日高起(춘소고단일고기) 봄밤이 짧음을 괴로워하며 중천에 해가 떠 일어나니
從此君王不早朝(종차군왕부조조) 이로부터 황제는 아침 조회를 보지 않았네.
承歡侍宴無閑暇(승환시연무한가) 황제의 즐거움 받들어 모시고 연회 여느라 한가할 틈이 없었고
春從春遊夜專夜(춘종춘유야전야) 봄에는 봄놀이에 밤에는 잠자리에 전념했었네.
後宮佳麗三千人(후궁가려삼천인) 아름다운 후궁에 고운 미녀 삼천이 있었건만
三千寵愛在一身(삼천총애재일신) 삼천 명에 내릴 사랑 양귀비 혼자 몸으로 독차지했더란다.
金玉粧成嬌侍夜(금옥장성교시야) 황금 방에서 화장하고 교태로 밤 시중을 들고
玉樓宴罷醉和春(옥루연파취화춘) 옥 누각에서 잔치 끝날 땐 봄기운에 취했네.
姉妹弟兄皆列土(자매제형개열토) 양귀비의 형제자매 모두에게 영지를 베푸니
可憐光彩生門戶(가련광채생문호) 가엾고 불쌍했는데 그 집에 광채가 나게 되었더라.
遂令天下父母心(수령천하부모심) 마침내 천하의 부모들 마음이
不重生男重生女(부중생남중생녀) 아들 낳기를 중하게 여기지 않고 딸 낳기를 중하게 여기더란다.
驪宮高處入靑雲(여궁고처입청운) 여산에 있는 여궁은 높이 솟아 구름 속에 들어 있는 듯 하고
仙樂風飄處處聞(선악풍표처처문) 신선 음악이 바람을 타고 곳곳에서 들려오네.
緩歌慢舞凝絲竹(완가만무응사죽) 부드러운 노래 하늘거리는 춤은 관현악기 반주에 어우러지고
盡日君王看不足(진일군왕간부족) 진종일 양귀비를 바라보건만 황제는 그래도 부족하다고 하였네.
漁陽鼙鼓動地來(어양비고동지래) 어양에서 반란군 기병들이 북치는 소리 지축을 흔들며 몰려오니
驚破霓裳羽衣曲(경파예상우의곡) 놀래서 예상 우의곡(가무곡)을 멈추게 했네.
九重城闕煙塵生(구중성궐연진생) 구중궁궐에도 연기와 먼지가 자욱하고
千乘萬騎西南行(천승만기서남행) 수천만 기병들은 서남으로 달아났네.
翠華搖搖行復止(취화요요행부지) 황제의 깃발을 흔들며 가다서다 하면서
西出都門百餘里(서출도문백여리) 도성의 서쪽 백여리에 이르렀네.
六軍不發無奈何(육군부발무내하) 육군(황제 근위부대)이 움직이지 않으니 무엇을 어찌 하겠는가?
宛轉蛾眉馬前死(완전아미마전사) 고꾸라져서 미인(양귀비)은 말 앞에서 죽었네.
花鈿委地無人收(화전위지무인수) 꽃 비녀는 땅에 떨어졌는데 거두는 사람도 없고
翠翹金雀玉搔頭(취교금작옥소두) 비취색 머리빗, 금작, 옥비녀도 떨어졌단다.
君王掩面求不得(군왕엄면구부득) 황제는 얼굴을 가릴 뿐 양귀비를 구하지도 못했고
回看血淚相和流(회간혈루상화류) 뒤를 돌아보며 피눈물만 흘리더라.
黃埃散漫風蕭索(황애산만풍소삭) 누런 흙먼지가 자욱하게 날리고 바람은 쓸쓸하고 삭막한데
雲棧縈紆登劍閣(운잔영우등검각) 나무사다리를 걸쳐 놓은 꾸불꾸불한 길로 황제는 검각산을 올랐네.
峨嵋山下少人行(아미산하소인행) 아미산 아래는 오가는 이도 드물고
旌旗無光日色薄(정기무광일색박) 황제의 깃발은 빛을 잃고 햇빛도 희미했다네.
蜀江水碧蜀山靑(촉강수벽촉산청) 촉강의 강물은 짙푸르고 촉산도 푸른데
聖主朝朝暮暮情(성주조조모모정) 황제는 아침저녁으로 양귀비와의 情을 생각하더란다.
行宮見月傷心色(행궁견월상심색) 행궁(피난처에 있는 임시 궁궐)에서 달을 보며 마음 상하고
夜雨聞鈴腸斷聲(야우문령장단성) 밤비에 들려오는 방울소리가 애간장을 끊어지게 하더란다.
天旋地轉回龍馭(천선지전회룡어) 천하의 정세가 바뀌어 어가를 돌리는데
到此躊躇不能去(도차주저불능거) 여기(양귀비가 죽은 곳)에 이르러 주저하면서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네.
馬嵬坡下泥土中(마외파하니토중) 마외(양귀비가 죽은 곳 지명)의 언덕 아래 진흙더미 속에는
不見玉顔空死處(불견옥안공사처) 옥 같은 얼굴은 볼 수가 없고 헛되이 죽어 간 그 곳.
君臣相顧盡沾衣(군신상고진첨의) 황제와 군신이 서로 바라다보면서 눈물로 옷깃을 적시었다네.
東望都門信馬歸(동망도문신마귀) 동쪽의 장안 도성 문을 향하여 말에게 맡기고 돌아가네.
歸來池苑皆依舊(귀래지원개의구) 궁궐에 돌아와 보니 연못과 정원은 그 전과 똑같은데
太液芙蓉未央柳(태액부용미앙류) 태액지의 부용과 미앙궁의 버들은
芙蓉如面柳如眉(부용여면류여미) 부용은 양귀비의 얼굴이고 버들은 양귀비의 눈썹인데
對此如何不淚垂(대차여하불루수) 이를 대하고 보니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으랴.
春風桃李花開日(춘풍도리화개일) 봄바람에 복숭아꽃, 자두꽃 피는 날
秋雨梧桐葉落時(추우오동엽낙시) 가을비에 오동잎 떨어질 때
西宮南內多秋草(서궁남내다추초) 서궁과 남원에 가을 풀 우거져도
落葉滿階紅不掃(낙엽만계홍불소) 낙엽이 섬돌에 수북이 쌓여 붉은 빛을 띠어도 쓸어내는 이도 없구나.
梨園子弟白發新(이원자제백발신) 이원의 자제들(궁궐의 가무단원)은 백발이 성성하고
椒房阿監靑娥老(초방아감청아노) 양귀비가 거처하던 궁에서 시중들던 젊고 예쁜 궁녀들도 늙어 버렸네.
夕殿螢飛思悄然(석전형비사초연) 저녁때 궁궐에 반딧불이 날아다니면 심사는 더욱 쓸쓸하고
孤燈挑盡未成眠(고등도진미성면) 외로운 등잔불 심지 다 타도록 황제는 잠 못 들었네.
遲遲鍾鼓初長夜(지지종고초장야) 느릿느릿 울리는 종소리와 북소리 가을 초저녁 밤은 긴데
耿耿星河欲曙天(경경성하욕서천) 은하수가 훤해지며 어느새 새벽이 다가오더라.
鴛鴦瓦冷霜華重(원앙와냉상화중) 원앙 같은 기와에는 찬 서리꽃이 겹겹이 쌓였는데
翡翠衾寒誰與共(비취금한수여공) 비취색 이불은 차갑기도 하여라 그 누구와 함께 덮고 잠을 자려나?
悠悠生死別經年(유유생사별경년) 아득하고도 아득하구나 생사를 달리한 지 몇 년 이던가.
魂魄不曾來入夢(혼백부증래입몽) 혼백은 꿈속에서도 만나 보지 못했네.
臨邛道士鴻都客(임공도사홍도객) 임공에서 온 도사가 장안의 홍도문에 머무르고 있다는데
能以精誠致魂魄(능이정성치혼백) 능히 지극한 정성으로써 양귀비 혼백에 다다를 수가 있다고 하네.
爲感君王輾轉思(위감군왕전전사) 누워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님(양귀비) 생각하는 황제에 감동해서
遂敎方士殷勤覓(수교방사은근멱) 그 도사의 가르침을 따라 방사(신선의 술법을 닦은 사람)시켜 혼백을 찾게 했네.
排空馭氣奔如電(배공어기분여전) 방사가 허공을 가르며 말을 몰아 번개처럼 달리어
升天入地求之遍(승천입지구지편) 하늘에도 올라보고 땅속까지 두루두루 찾아 다녔네.
上窮碧落下黃泉(상궁벽낙하황천) 위로는 푸른 하늘 끝 아래로는 황천까지
兩處茫茫皆不見(양처망망개불견) 양쪽 다 망망할 뿐 찾을 수가 없었더란다.
忽聞海上有仙山(홀문해상유선산) 홀연히 소문이 들려 왔네 바다위에 신선이 사는 산이 있음을.
山在虛無縹緲間(산재허무표묘간) 그 산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어렴풋이 희미한 아득히 먼 곳에 있다네.
樓閣玲瓏五雲起(누각영롱오운기)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구름이 피어나는데
其中綽約多仙子(기중작약다선자) 거기에는 몸이 가냘프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많다고 하더라.
中有一人字玉眞(중유일인자옥진) 그 중에 하나가 옥진이라는 선녀 인데
雪膚花貌參差是(설부화모참치시) 눈 같은 흰 피부 꽃 같은 외모가 그녀(양귀비)와 같다고 하더란다.
金闕西廂叩玉扃(금궐서상고옥경) 황금대궐 서쪽에 있는 방 옥으로 된 문을 두드리고
轉敎小玉報雙成(전교소옥보쌍성) 소옥(선녀의 심부름꾼)을 시켜서 쌍성(선녀의 시녀, 양귀시녀)에게 알리도록 했네.
聞道漢家天子使(문도한가천자사) 한나라 황제의 사자가 와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네.
九華帳里夢魂驚(구화장리몽혼경) 화려한 휘장 안에서 꿈에서 깨어난 혼백이 깜짝 놀라네.
攬衣推枕起徘徊(람의추침기배회) 옷을 잡고 베개를 밀어내고 일어나 서성이더니
珠箔銀屛迤邐開(주박은병이리개) 진주 주렴과 은병풍을 연달아 열어 저치고
雲鬢半偏新睡覺(운빈반편신수각) 구름머리가 한쪽으로 기운 것이 방금 잠에서 깨어난 듯
花冠不整下堂來(화관부정하당래) 머리의 화관도 바로잡지 못한 채 뜰 아래로 내려오네.
風吹仙袂飄飄擧(풍취선몌표표거) 바람 불어와 선녀의 소매 자락이 나부끼니
猶似霓裳羽衣舞(유사예상우의무) 예상 우의무(가무곡)를 추던 모습 같구나.
玉容寂寞淚闌干(옥용적막루란간) 옥 같은 얼굴은 쓸쓸하고 고요한데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니
梨花一枝春帶雨(이화일지춘대우) 배꽃이 활짝 핀 나뭇가지가 봄비에 젖은 듯하구나.
含情凝睇謝君王(함정응제사군왕) 정다운 눈길로 지그시 바라보며 황제께 전하는 말을 도사에게 하는데
一別音容兩渺茫(일별음용양묘망) “한 번 헤어진 후 목소리와 얼굴 듣고 뵙지 못하여 어렴풋하옵니다.
昭陽殿裏恩愛絶(소양전리은애절) 소양 궁궐 안에서 받던 은총도 끊어졌고
蓬萊宮中日月長(봉래궁중일월장) 이 곳 봉래 궁궐에서 보낸 세월 길었답니다.
回頭下望人寰處(회두하망인환처) 머리를 돌려서 저 아래쪽 인간세상을 바라보았으나
不見長安見塵霧(불견장안견진무) 장안(당나라 수도)은 보이지 않고 먼지와 안개만 보이더군요.
唯將舊物表深情(유장구물표심정) 다만 옛 물건으로 저의 깊은 情 나타내고자
鈿合金釵寄將去(전합금채기장거) 자개 향합과 금비녀를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釵留一股合一扇(채류일고합일선) 비녀에서 일부분 자개 향합에서 한 짝을 가지고자
釵擘黃金合分鈿(채벽황금합분전) 비녀에서 황금다리 쪼개내고 자개 향합에서 한 짝을 떼어냈지요.
但敎心似金鈿堅(단교심사금전견) 다만 두 사람 마음을 금비녀와 자개 향합처럼 굳게 지켜나간다면
天上人間會相見(천상인간회상견) 하늘과 인간세상으로 나누어진 우리 두 사람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臨別殷勤重寄詞(임별은근중기사) 도사가 떠나려 할 때 간곡하게 거듭해서 전하는 말 있었는데
詞中有誓兩心知(사중유서양심지) 그 말속에는 황제와 양귀비 둘 만이 아는 맹세가 있더란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칠월 칠일 칠석날에 장생궁궐에서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 아무도 없는 오밤중에 둘이서 서로 만나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 있을 땐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하늘과 땅이 아무리 장구하다 하여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슬픈 사랑은 영원히 끊어지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