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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김용택)

haagam 2011. 9. 28. 08:20

서명 :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저자 : 김용택

출판 : 창작과 비평사(1997.4.30 초판1쇄/ 2000.7.15 초판11쇄)

 

이 책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평생을 살아온 자신의 고향인 진메마을을 중심으로어릴적 꼬질꼬질 가난하고 때 국물나던 정겨운 이야기들을 소박하고 또는 질펀하게 펴낸 책이다.

 

서문에 의하면 김용택의 진메마을 이야기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라는 제목으로 진메마을 의 형식에 대해 쓴 글 중심의 산문집을 냈었는데 의외의 독자격려를 받고, 이번에는 진메마을에서 살아온 자신의 경험담을 중심으로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라는 두번째 수필집을 낸다고 말하고 있다.

 

왜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고 말했을까?

 

보통 수필집의 제목은 그 책의 작은 제목 중의 하나이곤 했던 기억으로 목차를 찾아봐도 그런 제목의 글이 없었다.

 

그렇게 가진 것은 없지만 따듯하고 정겹던, 서로 진정한 의지가 되었던, 온 천하가 슬로우 시티였던 그 시대를 벗어나서,집집마다 기름보일러를 설치하고 큼직한 칼라텔레비젼을 놓고 사람마다 손전화를 하나씩 들고다닐 뿐만아니라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우리는 그 때보다 더 행복한가?

 

한마을에서 태어나 죽을 때가지 그 마을을 살았던 옛 농부들은비록 그들의 삶이 비록 가난하고 누추하더라도 그들은 자연과 더불어 인간의 삶을 느리고 더디게 가꾸며 행복하게 살았다. 저자는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행복이 없는 무서운 시대가 된 것은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사라져가는 때문은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한다.

 

책을 열면 만나는 첫번째 글의 제목은 <돼지잡는 날>이다. 그는 딱히 취미도 없고 친구라 해 봐야 강진면, 덕치면 동갑내기들 모두 합쳐 15명이 전부라고 너스레를 떨며, 영화를 즐기는 얘기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어릴 적 동네에서 돼지잡아 나눠먹던 얘기들을 질펀하게 늘어놓는다.

 

동네사람들이 모여 돼지 귀를 잡고 넘어뜨리면, 앞뒤 다리를 묶고 들어올려 근수를 재고, 모로 뉘여 죽이는 일, 가마솥에 물을 끓여 털을 벗기면서 온 동네 목소리 큰 남자들이 벌이는 한바탕 어수선한 모습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 가마솥에 밥을 하면서 철에 따라 감자나 고구마를 같이 쪄서 밥이 오기전에 미리 먹고 그 다음 밥을 먹어 배를 채우던 일이나, 무밥을 먹고 숭늉을 먹으면 그 비릿한 냄새가 나서 우물가에 가서 냉수를 먹었던 일, 전라도 사투리 지죽이라 해서 김치 절임 싱건지를 넣고 죽을 끓여 먹던 일 들을 회상한다.

 

작가의 어머님은 밥을 잘 지어서 동네 큰 일에 밥선수로 뽑혀 다니셨다 말하면서 어머니의 환한 얼굴과 소복하게 구멍이 송송 뚫린 봉곳한 밥그릇을 이야기한다.

 

글로 적은 <그 때를 아시나요?>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구체적이고 소상하며 재미있게 적어 문학적 가치를 떠나 기록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우리의 어릴 적 고향 옛 이야기들이고, 평생동안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섬진강 시인 김용택 만이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전에 지난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해 냈을지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섬진강변에서 살았던 사람들도 나와 같은 삶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치 돼지 잡던 그 어수선한 동네 마을 사람들 중에 나도 같이 서 있는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요즘 살아가는 것이 너무 각박해 진 것이 사실이다. 너무 험난하게 자살 비율이 너무 높다느니 하는 사례를 떠나서도 변화와 혁신, 규격과 격식, 효율과 성과, 취업과 승진, 계획과 비젼 등 날마다 듣게 되는 이런 말 속에는 얼마나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우며 과격한 표현들인가?

 

과거 농민들은 특유의 느긋함과 기다림, 새로운 것에 대한 경계심, 무사태평한 생활태도가 전부였다.

콩하나라도 나눠먹은다는 말을 늘 입버릇처럼 하고 살았고, 동네 나즈막한 담 넘어로 지나가는 이웃이 다 드려다 보이고, 마침 들마루에 나 앉아 부친개를 부치거나 보리밥을 비벼 먹다가도 지나가는 이웃을 불러 같이 먹었다.

 

문이 닫힌 집에 신발이 옹기종이 모여 있으면 무슨 일이 있는지 궁굼해 지나다 들러 같이 이웃이 되었고, 싱건지 동지미에 고구마 쪄서 나눠먹고, 수제비해서 같이 먹으면서, 비록 남루해도 마음은 편안했다.

전세 올려달라는 얘기도 없었고, 애들 과외비나 휴대폰 쓰는 일은 없었다. 텔레비젼이 없어도 사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동네 사랑에는 물에 불린 짚단을 들고 가면 삼태기 짚신 등 이런저런 생활도구를 만들어가면서 담배가 없어도 걱정이 안되고 부인과 좀 언짢은 일이 있었더라도 이런저런 얘기 속에 스스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적어도 시멘트 담벼락 한 가운데 텔레비젼을 놓고 꽁꽁 숨어서 텔레비젼 보며 외로와하는 오늘날 우리네와는천량지차였다.

 

무슨 얘기를 해도 어떤 말을 해도 그 속에 그리움과 정이 같이 뭍어나는 것은 그 곳에는 인정이 항상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평생 두 개의 산을 바라보며 살았다고 말한다. 하나는 그가 근무하던 물우리초등학교 앞산이고, 또 하나는 저자가 사는 진메마을 앞산이었다. 이 산과 허에져 살아본 적이 별로 없다.

 

산길에 머리덩굴 다래덩굴이 있고 봄이면 개복숭아꽃이 유화물감을 흘린 듯 피어나고, 앞산에 달이 불끈 솟으면 검은 산이 되고 달이 이만큼 다가오면 환산 산이 되고, 별이 무수히 떠 있는 캄캄한 밤이면 소쩍새가 징허기 운다. 오월이면 노란 꾀꼬리가 울며 날아다니고, 겨울이면 부엉이가 잠자리를 뒤척이게 하는 곳이다.

 

사람이 고향을 떠나거나 유학을 가서 큰 공부를 하지 않아도, 착하고 순한 아이들을 가르치기만 하고 살아도,고운 심성이 길러지고 따듯한 글을 쓰는 재주가 생겨서 우리같이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참 신비스럽다.

 

소쩍새가 울고 밤꽃이 피면 그 밤꽃에 코피가터질 것 같이 어지름증을 타며 강변을 배회할 것이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안정감 속의 그리움 들, 정말 그리운 것 들은 그렇게 산 뒤에 있을지도 모른다.

 

(학바위, 2011)


시인 김용택

1948.9.28~ (2011현재 63세)

전북 임실 출신, 순창농림고등학교

초등학교 교사

섬진강 시인

2002년 제11회 소충사선문화상
1997년 제12회 소월시문학상

2003 제4대 전북작가회 회장
2002 전북환경운동 공동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