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자전거

봄의 서곡(노천명) 본문

글로 그린 그림

봄의 서곡(노천명)

haagam 2011. 10. 18. 08:38


봄의 서곡

(노천명)

 

누가 오는데 이처럼들 부산스러운가요

목수는 널판지를 재며 콧노래를 부르고

하나같이 가로수들은 초록빛

새옷들을 받아들었습니다

 

선량한 친구들이 거리로 거리로 쏟아집니다

여자들은 왜 이렇게 더 야단입니까

나는 鋪道에서 현기증이 납니다

삼월의 햇볕 아래 모든 이지러졌던 것들이

솟아 오릅니다

 

보리는 그 윤나는 머리를 풀어 헤쳤습니다

바람이 마음대로 붙잡고 속삭입니다

 

어디서 종다리 한 놈 포루루 떠오르지 않나요

꺼어먼 살구남기에 곧

올연한 분홍베일이 씌워질까 봅니다

 

*

인터넷에서 <봄의 서곡>이라는 이름으로 노래한 사람이 많은 것을 알았다. 시도 많고 노래도 많았다. 봄은 다른 계절보다 겨울을 지나 봄 기운이 돌기 시작하여 봄을 느끼는 싯점을 노래하는 것이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노천명은 짧은 인생을 살았다.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라노래한 것처럼 그의 사진을 보면 곱고 서늘하며 총명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늘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다소곳하고 조신한 모습의 시인이었다.

그녀는 황해도에서 1919 부친 사망을 계기로 어머니의 고향인서울로 내려와 진명학교를 거쳐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처음에는 향토적이고 풍물적인 소재를 잘 절제된 감정으로 투영하여 소박고 여성 특유의 섬세한 정감의 세계를 노래하였다. 그후 다양한 생활의 변화 속에서 그 나름대로의 삶의 애환을 노래하였다.

 

그렇지만 이 시는 얼마나 여성스럽도록 고우며, 시어가 감미롭고 봄이 느껴지는 환경이 눈에 선하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목수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새 집을 짓느라 널판지를 재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부산해지고 여자들이 더 야단이고, 보리는 윤나는 머리를 풀어헤지고 바람은 마음대로 붙잡고 속삭이고, 종다리 한놈 포루루, 살구나무 분홍 베일... 봄의 서곡을 젊은 처자 시인답게 너무 고운 필치로 봄을 노래한다.

 

이제 붉은 단풍이 드는 단계를 달력에 맞춰 등고선처럼 표시하는 달력을 보며 몸을 움추리고 겨울을 대비하는 싯점에서 문득 봄을 노래하는 노천명의 봄의 서곡을 읽어보면서 봄의 상서로움과 그의 일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학바위, 2011)

 

노천명(베로니카)

1912~1957(45)

황해도 장연 출생

1926 진명여고 졸업,

1934 이화여전 영문과 졸업

1934 조선중앙일보 학예부 기자

이화여전을 다닐 때부터 시 창작을 시작하여, 졸업후에는 조선중앙, 조선, 매일신보 등의 기자를 지냈고, 1941-1945까지 태평양전쟁을 찬양하는 친일 작품을 쓰다가 8.15 광복 뒤에는 서울신문, 부녀신문에 일하였다. 1950년 6.25전쟁 때에는 미쳐 피난하지 못하여 문학가동맹에 가담한 죄로 9.28 수복 후 부역 혐의를 받고투옥되었다가 1951년 출옥하였다.

이화여전 재학 때인 1932년에 시 <밤의 찬미()> <포구()의 밤> 등을 발표하였고, 그후 <눈 오는 밤> <사슴처럼> <망향()> 등 주로 애틋한 향수를 노래한 시들을 발표하였다.

1938(26)년 초기의 작품 49편을 수록한 제1시집 <산호림()>을 출간하고,1945(33)년 2월에 제2시집 <창변()>을 출간하였는데, 여기에는 향토적 소재를 무한한 애착을 가지고 노래한 <남사당()> <춘향> <푸른 5월>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녀는 1950 한국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피신하지 않고 임화 등 월북 좌파 작가들이 주도하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여 문화인 총궐기대회 등의 행사에 참가했다가 대한민국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뒤 조경희와 함께 부역죄로 체포되어 투옥된 것이다.

모윤숙 등 우파 계열 문인들의 위치를 염탐하여 인민군에게 알려주고 대중 집회에서 의용군으로 지원할 것을 부추기는 시를 낭송한 혐의로 징역 20년형을 언도받아 복역하다가 몇개월 후 사면으로 풀려났다.

제3시집 <별을 쳐다보며>(1953,33세)에는 부역 혐의로수감되었을 때의 옥중시와 출감 후의 착잡한 심정을 노래한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밖에 수필집으로 <산딸기> <나의 생활백서()> 등이 있다.

그녀는 평생 홀로 살았다.그녀가 산호림을 출판하던 1938(26)에 <극예술연구회>에 가입하여안톤 체홉의 <앵화원>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이때 관객으로 온 보성전문학교 김광진 교수와 사랑에 빠진다. 그와 약혼까지 하였으나기혼남성이기에 단념하였다 한다.

널리 애송된 그의 대표작 《사슴》으로 인하여 ‘사슴의 시인’으로 애칭되었다.

친일 작품으로는 <싱가폴 함락> <부인 근로대> <님의 부르심을 받고> <군신송> 등의 시와 르포인 《여인연성》 등이 알려져 있다.

.

'글로 그린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들5  (0) 2012.04.06
새해 새 아침은 (신동엽)  (0) 2012.01.03
한 잎의 여자(오규원)  (0) 2011.09.22
소나무에 대한 예배(황지우)  (0) 2011.09.21
사평역에서(곽재구)  (1) 2011.06.29